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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글짓기 수상작 모음 (양성평등 글짓기 예, 양성평등글짓기 자료)


양성평등글짓기 수상작 모음입니다. (양성평등 글짓기 예, 양성평등글짓기 자료)

<최우수상>

 

학교에서 난 평등하고 싶다

 

군산신풍초등학교

6학년 2반 장다희

 

66번 장다희!

‘이런! 이 학교도 여자가 남자 뒷 번호이다. 도대체 왜 꼭 남자부터 시작하는 거야?

해마다 반복되는 내 불만! 어김없이 올해도 번호에 대한 불만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전학을 온 이 학교도 여자가 남자 뒷 번호인 것이 아닌가! 남들은 이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인지, 나만 유별난 것인지…….

난 평소에 양성평등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편이다. ‘여자들은 수다를 많이 떤다.’ 라는 말의 편견을 깨기 위해 친구들과의 수다를 어느 정도 절제하는 것은 물론, 할머니께 ‘역시 여자가 남자보다는 못 하다니까.’ 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노력 하니까 말이다. 이런 나에게 1학년 때부터 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남자의 뒷 번호로 또 한 해를 지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 속상한 일이다.

작년인가? 선생님께 이 불만을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나에게 돌아온 답은 너무도 절망적이었다.

“행정적인 편의 때문에 그럴 거야. 선생님 때도 그래왔는 걸!

‘세상에, 우리 아버지 때도 그랬다고 하고, 우리 선생님 때도……. 그럼 나 때에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한다고?

괜히 질문했다가 더 화가 나기만 했다. 내가 사춘기여서 뭐든 화가 나는 거라고 우리 엄마는 말씀하시지만 내 생각엔 이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 아니면 선생님 말씀처럼 행정적인 편의 때문에 우리 여자들은 언제나 뒷 번호여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우리 여자들이 앞 번호가 되면, 행정적으로 뭐가 불편해지는 건가? 1번 김가혜... 15번 장다희, 16번 김수로... 언제쯤 이런 세상이 올까? 나의 이름은 장으로 시작되어서 언제나 끝 번호인데 나도 한번쯤 남학생 이름 앞쪽에 이름이 불리고 싶다.

“자, ! 남자들은 이 화분 좀 저리로 옮겨 놔라. , 거기 여학생들은 걸레 좀 빨아서 선생님 책상, 칠판이랑 먼지 좀 닦아 줄래?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데 또 내 신경을 건드리는 선생님의 말씀! “남자들은 화분 옮기고, 여자들은 걸레 빨아라.” “저도 화분 쯤 은 옮길 수 있다고요!” 순간적으로 튀어나가려는 말을 겨우 붙잡았다. 사실, 난 키도 크지만  힘은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화분 정도는 옮길 수 있는데 우리 선생님은 무심코 저렇게 심부름을 시키신다. 언젠가 받은 성교육에서 초등학교 때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키가 크고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내용이 기억이 난다. 우리 반을 봐도 대부분 남학생들은 여학생에 비해 덩치가 좀 작은 편이다. 아무래도 우리 선생님도 무거운 것은 남자가 들어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계시나보다.

사실, 이 부분에 내가 좀 흥분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빨래 개는 것을 도와달라는 엄마 말씀에 아빠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런 오물조물 빨래 개는 하찮은 일을 남자가 해야겠어? 나는 못해!

이 무슨, 조선시대 적 말씀인가! 그래도 우리 엄마는 포기하시지 않으셨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좀 도와주면 어때요?

이제는 결국 지신 아빠께서 집안일을 잘 도와주신다. 나중에 내 남편이 과거의 우리 아빠처럼 말하면 나는 가만 못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엔 우리 아빠도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나 집에서 남자들은 뭔가를 들어 나르고, 여자들은 앉아서 오밀조밀 닦고 정리하고 해야 한 다는 편견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 반 남학생들도 선생님의 무심코 시킨 심부름 속에서 ‘남자는, 여자는’ 하는 식으로 생각이 굳어버릴까 정말 걱정된다. 선생님들이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말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어떤 일이곤 시키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요즘엔 교과서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 교과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자는 소파에서 신문 보고, 여자는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는’ 그런 식의 그림은 잘 안 나온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한 부분은 있었다. 어제 1학년인 친척동생이 받아온 교과서 그림이 큼직하고 재미있길래 말하기․듣기 책을 쭉 훑어보는데 어떤 아이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빠는 책을 보다가 아이의 얘기를 듣고, 엄마는 사과를 깎고 계셨다. 아빠가 사과를 깎으시고, 엄마가 책을 보고 있으면 안 되나? 내 동생과 같은 1학년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엄마는 과일을 깎고, 아빠는 자기의 일을 하며 과일을 먹는 식으로 교육될 것이다. 그 뒷장으로도 엄마는 아이 옷을 챙겨주고, 앞치마를 매고 집에서 인사를 받는 장면들이 나왔다. 요즘엔 집에서 살림하는 아빠들도 많다던데 이런 장면은 아빠, 엄마를 골고루 그려놓았으면 좋겠다.

우리 숙모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신데, 나하고 가장 생각이 잘 맞는 분이다. 작년에 1학년을 맡으셨을 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1학년 애들한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런 걸 가르쳐주는 단원이 있는데, 정말 난감해. 다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누구는 친할머니, 누구는 외할머니라고 가르쳐 줘야 하니……. 그 ‘외’자가 ‘바깥 외’자 라는 게 문제야. 엄마아빠한테서 50%씩 피를 물려받았으면서 누구는 친할머니고, 누구는 바깥 할머니라는 게 말이 돼?

나는 숙모께 이 말씀을 들은 후부터 외할머니라는 호칭을 고쳐서 나운동 할머니라고 부르고, 할머니는 조촌동 할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내 동생한테도 계속 교육 중이다. 내가 나중에 결혼하고서도 내 아이가 우리 엄마를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속상할 것 같다. 학교 선생님들이 우리 숙모처럼 아이들에게 교육시켜 주시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만 말했나 보다. 선생님들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의 생각이 더 중요한 듯싶다.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어떤 상황이 왔을 때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것보다는 ‘이걸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생각해보는 것, 그게 양성 평등을 이루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여자가 불평등하게 살아왔다면, 이제는 우리가 바꿔나가면 되는 것이다. 누가 해놓기를 바라기보단 우리가 만들어 가면 된다. ‘내내 그래왔으니 어쩌겠어?’ 라는 생각에서 ‘내내 그래왔으니 바꿔야지’라는 생각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상상만 해도 즐거운 양성평등의 세상, ‘내 불만이 언제 있었냐.’ 싶은 그 날을 기대한다.

 

 

 

 

 

 

 

 

 

 

 

 

 

 

 

 

 

 

<최우수상>

삼촌의 당당한 직업, 미용사

 

경운중학교

                                                       3학년 11반 박소현

 

   “어머님, 그러지 마시고 같이 가세요.

   “난 안 간다. 너희들끼리 갔다 오너라. 사내자식이 어디 할 일이 없어서 여자들 머리나 만지는 직업을 가지노! 내가 그 놈을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창피스러워서 원!

  우리 삼촌은 미용사이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많았는데, 친절하고 솜씨도 좋아서 단골이 많다. 그런 삼촌이 미용실을 개업하는 날인데 아무리 가자고 해도 할머니께서는 막무가내이시다. 다른 분들께서 아들 덕분에 머리도 공짜로 하고 얼마나 좋으냐고 이야기하시면 버럭 화부터 내신다. 할머니께서는 삼촌이 미용사 직업을 택하신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신다. 단지 삼촌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예전에는 직업에 남녀구별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여자 운전사, 높고 험한 산을 정복하는 여자 산악인,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남자 디자이너를 많이 볼 수 있듯이 직업의 남녀구별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할머니께서는 삼촌이 미용사인 것이 부끄럽다 하시며 남들에게는 삼촌이 아예 논다고 하실 정도다. 나는 오히려 남자 미용사가 귀하던 시절에 자신의 적성을 살려 남의 이목에 구애받지 않고 미용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삼촌이 자랑스럽기만 한데 말이다. 자신의 적성은 무시한 채 남들의 이목 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과 달리 얼마나 당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인가! 삼촌이 지금이야 이렇게 미용실 개업을 하고 미용사가 되었지만 가부장 문화에 젖어있는 우리나라에서 삼촌이 미용사가 되기까지의 고생은 말도 못했다고 한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남자 미용사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남자망신 다 시킨다. 미용이 뭐고? 미용이!!

  할머니의 반대 때문에 삼촌은 몰래 배워야 했고, 어디서 상을 타와도 당당히 말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어머님,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어머님께서 안 가시면 얼마나 도련님이 섭섭하겠어요?

   “할머니, 같이 가아.

  우리집에서 할머니의 고집을 유일하게 꺾을 수 있는 장손인 막내 동생 재석이까지 동원되어서야 할머니께서는 못이기는 척 따라 나서셨다. 물론 우리는 차안에서 ‘모름지기 여자는 여자에게 맞는 일을 해야 하고, 남자는 남자에게 맞는 일을 해야지!’ 하시는 할머니의 강의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 했지만 말이다.

  사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부끄럽지만 공부를 곧잘 한다는 이유로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절친한 친구가 병마와 싸우는 걸 본 이후로 생명공학자가 되는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친구들은 수학, 과학 분야의 공부를 잘하니 훌륭한 생명공학자가 될 거라고 격려해주는 반면 할머니나 아버지께서는 남자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그런 힘든 직업보다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같은 조신한 직업을 가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여자이니까 괜히 설치지 말고 선생님을 하다가 좋은 남편 만나 시집이나 가라는 할머니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삼촌의 가게는 벌써부터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었고, 오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할머니께서 오셔서인지 삼촌은 유난히 즐거워하시며 손님들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하셨다. 삼촌 특유의 친절한 미소로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어떤 고정관념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섬세함을 요한다는 이유로 오래 전부터 여자 직업으로만 생각해 왔던 미용사! 할머니께서 펄쩍 뛰시는 이유 또한 그것, 한 가지이다.

  손님들이 모두 나가시고나자 삼촌은 할머니께 파마를 해 드리려고 했다. 그러자, “아서라 아서. 멀쩡한 머리 망치지 말고 됐다. 나는 내 단골 미용실에 가서 할란다.” 하시며 거부하시는 할머니! 그래도 삼촌은 능숙한 솜씨로 커트를 하고 파마를 하셨다. 남녀의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괴로웠을 법도 한데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니만큼 삼촌은 너무나 신이 나서 열심히 일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삼촌의 모습은 다시 한 번 더 직업을 결정할 때는 남녀 구별, 학력, 보수, 명예보다는 자신의 적성과 취미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속으로 망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시던 할머니께서도 완성된 머리를 보시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셨다.

  “니가 잘하는 것도 있네. 앞으로 밥은 안 굶겠다. 그래도 허구 많은 직업 중에 왜 하   필 미용사란 말이고”

  그냥 잘 한다고 칭찬해주시면 될 텐데 결국 핀잔을 주시는 할머니이시다. 무슨 직업이든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한데도 할머니께서는 무의식중에 남녀를 구분짓는 말씀을 불쑥불쑥 하신다. 뿌리 깊은 가부장 문화를 어른들 세대에서는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을지 모르지만 장차 이 나라를 책임져야 할 우리들은 양성 차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야만 한다.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하지 못할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젠 학교생활에서는 남녀차별을 별로 느낄 수 없다. 예전에는 앞 번호는 남자, 뒷번호는 여자였었는데 요즘은 구분 없이 가나다순으로 번호를 매기고 급식 당번도 똑같이 배정한다. 연약하다고 남학생들에게 무거운 것을 들어 달라고 하지도 않으며, 어머니는 가정, 아버지는 기술을 배우던 때와 달리 똑같이 앞치마를 두르고 김밥을 만들고 로봇도 만들고 자동차를 만든다. 이런 자연스런 학습과정이 우리가 사회에 나갔을 때도 아내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남편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못질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 날 이후 할머니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구 분들에게 삼촌자랑을 늘어놓느라 바쁘시다.

  “남자라고 미용사 못하라는 법도 없더라. 얼마나 손님이 많은지 우리 아들 머리 만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더라. 학교 졸업하고 취직 못해서들 난리인데 미용사 되겠다고 내 속을 그래 긁어 놓더니 요즘은 오히려 그 놈이 효자 노릇한다네. 허허, 다음에 우리 아들한테 머리하러 가자. 잘해주라 할 테니…….

  할머니의 말씀에서 할머니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다. 남녀의 직업에 대한 견해도 바뀌어야만 한다. 남자가 하는 일, 여자가 하는 일을 구분 지을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잘하고 어떤 일을 좋아하느냐일 것이다.

  이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21세기는 능력이 우선시되는 사회이다. 남자냐, 여자냐,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아니라 우리 삼촌처럼 자부심을 갖고 즐기면서 일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못 당하는 사람이 바로 일을 좋아해서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양성 평등의 기회를 누리고 사는 우리들이 사회의 주역이 되었을 땐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못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남자가 무슨……., ‘여자가 무슨…….’ 이라며 손가락질하는 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편견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개척했던 삼촌이 나는 너무 자랑스럽다. 고모부처럼 의사가 아니어도, 외삼촌처럼 변호사가 아니어도 자신의 직업에, 현재의 모습에 너무나 당당한 삼촌이 가장 자랑스럽다.

 

 

 

 

 

 

 

 

 

 

<최우수상>

아버지가 여는 아침

 

신평고등학교

2학년 1반 오창영

 

여보, 아침 다 차려놨소. 얼른 먹고 출근해야지. 창영, 건영 어서 일어나서 밥 먹 자. 

이것은 우리 아버지가 아침을 여는 소리이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바쁘시지만 천안에서 당진으로 출퇴근하시며 살림하느라 바쁘신 어머니를 돕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식사를 준비하신다. 잠이 많은 우리 형제를 깨워 주실 때는 아버지께서 손수 만드신 복분자 주스를 가져다 먹여주신다. 잠결에 마시는 복분자 주스가 참 달콤하다.

지금은 요리도 잘 하시고 살림을 도맡아 하시지만 아버지는 매우 엄격한 오씨 가문의 종갓집 8대 종손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남존여비 사상이 유난히 심한 유교집안에서 귀하게 자랐다. 외아들이면서 종손이다 보니 증조할아버지의 사랑이 유난하셨다고 한다. 하루 두 끼 먹기도 빠듯한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귀한 계란 반찬과 하얀 쌀밥을 먹고 자랐다고 요즘도 가끔 작은 할아버지들께서 부러워하신다.

종갓집에서 태어나서 종갓집으로 시집 오셔서 층층시하 어른들을 모시고 살면서 모진 시집살이를 하셨던 할머니의 유일한 삶의 위로는 아들이었다. 머리가 좋으신 할머니는 여자라는 이유로 배우지 못한 한을 아들을 통해 보상 받고 싶으셨던지 아버지를 열심히 뒷바라지하셔서 공학 박사로 키우셨고 아들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넌 모든 것이 부족하다. 어떻게 내 아들이 널 좋아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너 말     고도 며느리 할 사람 얼마든지 있다.

아들만이 삶의 목적이고 자랑이었던 할머니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하자 어머니를 미워하면서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키셨다. 가부장적인 집안의 남자들로 인해 시집살이의 고통을 몸소 겪으신 할머니께서 오히려 갓 시집와 모든 것이 힘들고 낯설기 만한 어머니에게 여자로서의 덕목이 부족하다며 집안의 남자들 모시기를 하늘같이 하라고 불호령을 하셨다. 할머니는 음식을 잘 만들어서 동네 잔칫집마다 불려 다니셨고 웬만한 옷은 이틀이면 완성할 정도로 뜨개질 솜씨가 뛰어났으며 할아버지 한복과 두루마기까지 손수 만드실 정도로 바느질도 잘 하셨다. 여름이면 모시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옷을 만들어 찹쌀풀로 풀해서 빳빳하게 다려 시원하게 입고 다니게 하셨다. 그런 할머니를 주변에서는 최고의 며느리라 일컬었고 할머니께서는 세대도 다르고 가정환경도 다른 며느리에게 당신의 기준을 요구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고향이 이북이어서 외롭게 살던 차에 얻은 자식이라 온갖 사랑과 신뢰를 받고 독립적으로 자랐으며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등학교 교사로 교단에 서게 되어 살림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종갓집 종손 며느리가 되었으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머니는 할머니가 보시기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계속 되는 집안일이 버거워 밤에 잠을 잘 때는 발바닥이 화끈거려서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힘들었고 쉴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화장실뿐이었지만 어머니는 할머니께 정성을 다했고 할머니는 어머니의 착한 심성과 성실하게 노력하는 태도에 감동하여 서서히 마음을 바꾸셨다. 그 후로 할머니는 그간 쌓아온 냉대와 미움을 모두 털어내시고 어머니의 전폭적인 후원자가 되셔서 오늘까지 변치 않을 뜨거운 사랑을 퍼 올리신다.

“애비야, 김장김치 아래 까는 무는 소금에 절이는 것이 아니라 굵은 소금을 무에 적당히 묻혀야 된다. 무 배추를 잘 골라야 김장 김치가 맛있단다. 새우젓은 좀 비싸도 육젓이 맛있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김치 국물에 돼지고기를 먼저 넣고 간이 베게 약불로 조금 끓이다가 김치를 넣고 끓이면 맛이 있단다.

바쁘신 어머니를 도우라고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전화로 요리 기술을 전수하신다.  

할머니의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어머니의 희생과 인내였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나의 아버지······.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실은 아버지도 처음에는 남존여비와 가부장적 사고의 대표자격이었던 분으로 할머니와 더불어 어머니를 한없이 힘들게 했던 분이었다. 가족을 위해 절대적으로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자신의 소망을 억누르는 전통적인 여성상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서 이토록 놀랍게 변하게 된 계기는 우리 가족이 교환교수로 호주에 가시게 된 아버지를 따라 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낯선 외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가족 모두가 긴장하고 있을 때, 오히려 자기 세상을 만난 것처럼 활기 있고 신나게 외국인들과 교류하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제일 빨리 적응하고 가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 사람은 가장인 아버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낯선 외국사람 속에서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따뜻함, 친화력으로 주변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며 특별한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밤늦도록 영어 공부를 하고 가족 모두의 일정을 책임지고 가족들의 생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는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노라고 하셨다. 잠재된 능력이 발휘될 기회를 얻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동안 가족을 위해 어머니가 그랬듯이 이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외조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우리보다 양성 평등을 미리 이룩한 나라에서 남녀가 더욱 행복하고 상호발전을 추구하는 모습 또한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나도 외국 생활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들은 가사 노동과 육아에 너무 시달리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꿈을 펼치기가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나라 주부들처럼 식사 준비와 가족 뒷바라지에 온갖 정성과 시간을 들이며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얼마간의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생활이 정말 인간적으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삶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식사 준비도 비교적 간단하고 청소도 아침저녁으로 엎드려 걸레질할 필요가 없건만 가족이 함께 돕고 나누며 함께 여가를 즐기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뜨거운 밥과 찌개, , 김치, 여러 가지 반찬을 끼니때마다 직접 만들고 매일 온 집안을 쓸고 닦으며 평생 가사 노동에 시간을 소비하고 육체를 혹사하는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확연히 대조되었다. 동시대에 살면서 우리나라 주부들의 삶이 호주의 주부들에 비해 너무나 힘들고 고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몸소 모범을 보여주셨고 이후로는 주위의 아는 분들께 부인을 이해하고 가사 역할을 분담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하시며 가정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해 주기도 하셨다. 양성평등이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호주에서의 1년간의 새로운 경험은 우리 가족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내적 성숙의 기회가 되었다.

외국 생활을 마치고 우리나라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먼저 할머니께 중대 선언을 하셨다.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던 아들이 아내의 공부를 돕기 위해 가사를 책임지겠다고 하니 할머니로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결심이 너무나 굳었고 결혼생활 10여년 동안 어딘지 지치고 우울해보이기도 하던 어머니가 전에 없이 밝아지고 생기가 도니 이제 분가하게 된 마당에 할머니도 어쩔 수가 없어하셨다.

할머니를 닮아 감각이 있었던 아버지의 음식 솜씨는 이제 여느 가정주부 못지않다.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담그신 동치미는 대성공이었고 동짓날 새알심까지 넣고 쑤어주신 팥죽은 정말 맛있었다. 아버지가 개발하신 몇 가지 살림비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먹다 남은 포도 찌꺼기로는 식초를 담으시고 발라 먹고 버릴 대하껍질은 바싹 구워 갈아서 가루로 만든 뒤 된장찌개 끓일 때 한 숟갈씩 넣어주면 꽃게를 넣은 것 같은 깊은 맛이 우러난다. 청국장찌개를 끓일 때는 청국장을 믹서에 갈아서 끓이면 국물이 부드럽고 고울 뿐만 아니라 더 맛있다. 갈비탕을 끓일 때는 먼저 갈비찜을 한 뒤에 맛있는 찜 간이 밴 갈비로 탕을 끓이면 고기가 훨씬 연하고 맛이 있다. 팥죽이나 녹두죽을 쑬 때는 흰죽을 먼저 쑨 뒤에 녹두나 팥을 간 가루를 넣고 끓이면 눋지 않게 쉽게 죽을 쑬 수 있다고 하신다. 이외에도 아버지만의 창조적인 요리 비법은 많이 있다. 부엌에서 대물림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해서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하기 때문에 살림의 고수인 어머니도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지혜가 속출한다. 공학도인 아버지의 능력은 이제 또 다른 차원의 능력을 계발함으로써 한 차원 높아진 것이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젠 새로운 즐거움이 된 것이다. 아버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제는 최고의 요리에 도전하겠다며 프랑스 요리 학원에 다닐 계획이시다. 머지않아 낭만적인 프랑스 음식으로 차려진 멋진 식탁을 기대해본다.

가정교과 담당으로 교직생활을 해 오신 어머니는 가정과와 관련된 능력을 두루 갖춰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 하셨지만 가사와 육아를 모두 아버지께 부탁드리기가 미안해서 차마 실행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이렇게 기꺼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살림을 도맡으면서 미안해하는 어머니를 격려하자 아무런 걱정 없이 공부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는 늦도록 아침 저녁식사 준비 및 장보기와 어머니 간식 준비까지 즐겁게 하셨다.

아버지가 변화되면서 가정적으로 더욱 화목해지자 할머니께서도 여성이 사회에 나가서 성공하려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며 어머니를 적극적으로 도우셨다. 조리 시간을 줄이라고 갖은 나물을 뜯어 데쳐서 1회분씩 지퍼 백에 담아 냉동시켜 보내셨고 다양한 김치와 밑반찬에 간식으로 먹으라고 각종 떡까지 보내시며 어머니를 뒷바라지 하셨다. 제과 기능사 필기시험 준비할 때는 할아버지께서 며느리 시험공부 해야 된다고 할아버지 생신을 생략한다고 친척들에게 연락하셔서 어머니께서 무척 죄송스러워 하기도 했다. 아버지에서 시작된 변화가 할아버지까지 이어지면서 더욱 행복해 하신 분은 할머니였다. 칠십 평생을 한결같이 남편에게 순종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시면서 며느리에게는 가혹한 시어머니였던 할머니께서 이젠 당신 자신을 돌아보며 여유를 갖게 되자 며느리에게도 관대해지시니 가족들은 더욱 화목해졌고 새로운 가족 문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온 가족의 후원에 힘입은 어머니는 방학 때마다 학원을 다니며 바쁘고 피곤하신 일상 속에서도 자아성취와 자기계발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6, 지금은 한식조리사, 양식조리사 자격증에 이어 제과기능사와 제빵기능사 뿐만 아니라 종이접기 사범 자격증까지 따셨고 영어 담당은 아니지만 원어민 영어연수도 5년 동안 다녔으며 기술과목 부전공도 이수하셨다. 앞으로는 대학원 공부를 하실 계획이다. 나는 이런 부모님을 노력하는 그 모습 자체로도 존경하지만 두 분의 노력과 성취가 ‘사회봉사’를 목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자랑스럽다. 부모님께서는 직장에서 은퇴하시면 배우신 모든 능력을 동원해 사회에 봉사하고 헌신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

양성 평등을 몸소 실천하시는 부모님의 생활태도를 보며 자라온 우리 형제는 남녀의 일을 구분 짓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식사준비, 설거지, 빨래, 옷장정리, 청소 등 가사 일을 도우면서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이 바쁘시면 우리가 식사 준비를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보이스카우트부에서 야영을 갔었는데 내가 지은 밥이 제일 맛있다고 선생님들도 모두 우리 조에서 식사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 형제가 이렇게 된 것은 생활 속에서 두 분을 통해 배운 것이지만 방학 때마다 어머니께서 실시한 ‘엄마 체험’이라는 특별 교육의 영향도 크다. ‘엄마 체험’은 말 그대로 식사준비, 장보기, 이불 빨래하기, 청소하기, 이불보 씌우기 등 하루 종일 내가 주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직접 집안일을 맡아 해보니 끝없이 매일 반복되는 가사 노동이 정말 힘들었지만 그것은 어머니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요리 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어머니는 된장찌개, 스파게티, 달걀말이, 육개장, 불고기, 만두, 미역국 등 많은 조리를 가르치셨다.

“남자들도 다 할줄 알아야 한다. 자취를 하던 유학을 가든 결혼을 하던 음식을 만들     줄 알아야 자기 건강을 지킬 수 있고 나아가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대학 가      서라도 시간이 나면 조리학원에 다니면 어떻겠니? 요리를 잘하는 남자가 멋있지       않니?

어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인간의 기본 능력이라고 강조하신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함께 집안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나도 가사 일을 분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주말 외에는 가사 일을 도울 기회가 없지만 내 동생은 아버지를 도와 가사 일을 능숙하게 한다. 빨래가 다 되었으면 빨래를 널고 학원에 가고 쓰레기가 있으면 나갈 때마다 쓰레기를 들고 나간다. 우유팩은 깨끗이 씻어 말려 펴서 분리수거하고 주스 병이나 요구르트병도 깨끗하게 헹궈서 분리수거 한다. 일요일이면 녹차를 타서 서비스하기도 하고 설거지는 도맡아 하다시피 한다. 학교에서 조리실습을 할 때는 친구들이 엄마라고 부른다고 자랑하기도 하는 내 동생의 취미는 음식 카탈로그 수집이다. 우리형제는 같은 또래들 보다 요리를 잘 하는 것이 뿌듯하고, 그런 우리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동생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가정에서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조사해 오라는 과제를 냈다. 동생은 당연히 '아빠 : 식사 준비, 세탁, 청소’, ‘엄마 : 학원가기, 내 공부 도와주기, 운동하기’ 라고 써냈다. 그 때 담임선생님께서  

“건영아, 바꿔 쓰지 않았니?

하고 물으셨다고 한다. 동생이 아니라고 하니까 조심스런 표정으로

“그럼 혹시 아버지가 실직하셨니?” 하시더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랑에 힘입어 힘차게 학교생활을 함으로 해서 보람을 느끼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스스로도 살림하는 것이 좋아 자기만족감을 누리며 사신다. 어머니는 올해 부장직을 맡으셨고 야간자율학습 지도에 기숙사 감독에 더욱 바빠지셨지만 어머니의 성장은 곧 아버지의 성장이고 그것은 서로에게 삶의 자부심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무조건 지원하신다. 아버지께서 학위를 받기까지 어머니가 얼마나 애쓰셨는가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양성 평등을 이룩한 화목한 가정 분위기는 우리에게도 좋은 성장 환경이 되었고 이러한 부모님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우리 형제에게 미래에 꾸미고 싶은 바람직한 가정의 모델이 되었다.

힘만이 남성다움의 상징은 아니다. 가정폭력, 깡패 조직의 미화, 해외여행에서 한국 남자들이 보여주는 성적 추태, 멋진 왕자님만 만나면 행복 할 수 있다는 환상이 낳은 유능한 여성인력들의 자기포기 현상, 지적 능력보다 외모가 여성의 경쟁력이라는 인식 등, 잘못된 성역할 습득은 우리사회 곳곳에서 여러 가지 병폐를 낳고 있다. 섬세하고 자상하며 희생적이고 강인한 모성적 특성이야말로 첨단 산업과 문화 산업이 발달하는 현대일수록 여성의 능력 발휘에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며 사회 각층에서 여성 리더로서의 역할 수행에도 유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 스스로도 도전 정신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개척하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 양성 평등이라는 용어 자체가 양성이 불평등하다는 비판적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그 말은 없어지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남녀를 떠나 인간 스스로 타고난 각자의 재능과 적성을 발견하여 계발하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생활 태도로 더욱 행복한 가정, 더욱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게 되지 않을까?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주고 이해하며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부모님을 본받아 나도 내 인생을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며 남을 위해 봉사하는 더불어 사는 양성 평등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 가족에게 아침을 열어 주시듯 나도 모두를 위해 행복한 아침을 열어줄 것이다.

 

 

 

 

 

 

 

 

 

 

 

 

 

<우수상>

            

내 꿈은 농구 선수

 

서울양남초등학교

6학년 2반 박소라

 

 나는 농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런데 키가 작아서 고민이다. 내가 고민을 하면 엄마는 아직 클 때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하신다. 하지만 6학년이 되었는데도 내 키보다 큰 애들이 훨씬 더 많은 걸 보면 내 키가 농구선수가 될 만큼 자라기는 틀린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아직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비록 TV에서지만 농구선수들이 마루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높은 농구 골대에 골을 넣는 장면을 보면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다.

 어느 날 저녁  TV 앞에서 프로농구 소식을 전하는 스포츠 뉴스를 보고 있을 때였다.

 “정말, 멋진 선수야. 어쩌면 저렇게 볼을 잘 다룰 수가 있지?

삼성 농구단의 서장훈 선수가 멋지게 골을 넣는 모습을 보고 있던 아빠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저렇게 멋진 플레이를 하는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아빠!

그 장면에 함께 넋을 빼앗기고 있던 나도 감탄하며 말했다. 그랬더니 거실에 앉아있던 우리가족 모두가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여자가 무슨 농구야?

 이제 4학년 밖에 안 된 동생 완성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자가 농구선수 돼서 뭐하게?

 완성이 말에 내가 미처 반박할 틈도 없이 아빠가 말씀하셨다. 방금 전 서 장훈 선수의 멋진 플레이를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아빠가 하신 말씀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운동선수가 되려면 남자로 태어났어야지.

 내가 아빠 말씀에 어이가 없어서 잠시 멍하게 있는 사이 빨래를 개시느라고 여태까지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던 엄마까지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식구들은 모두 한마음이 된 것처럼 나를 어이없게 바라보았지만 나는 식구들이 어이가 없었다.

 나는 내가 농구선수가 되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게 내가 농구선수가 되기에는 키가 너무 작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농구선수 중에는 남자도 있지만 여자 농구 선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농구선수가 되기 힘들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아빠는 물론이고 가끔 우리나라는 남녀 차별이 너무 심하다고 불평을 하시던 엄마까지도 운동선수는 남자한테 어울린다고 말씀하시는 데 정말 놀랐다.

 “그럼, 운동은 남자만 하는 거예요?

 나는 내 꿈이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빠서 따지듯이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운동선수가 여자한테 어울리는 직업은 아니니까 한 말이야.

 엄마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어울리지 않아요? 엄마도 우리나라 여자 운동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 따고 그러면 자랑스러워 하셨잖아요?

 운동선수가 여자 직업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씀에 나는 더 화가 났다. 그래서 더 큰 목소리로 따져 묻자,

 “얘가 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자꾸 따지고 들어?

말문이 막힌 엄마가 내게 핀잔을 했다.

 “엄마는 말로는 남자랑 여자랑 평등하다고 하시면서 왜 직업을 차별하세요?

 단지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 꿈이 무시당했다는 게 정말 속상했다. 엄마는 얼른 할말이 생각나지 않으셨는지 내가 조금 버릇없이 따져 물었는데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뿐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누나는 키가 작아서 농구 선수가 되기는 힘들 걸!

그러자 옆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던 완성이가 끼어들며 약을 올렸다.

 “내가 지금 키 얘기 하자는 거야?

 약이 잔뜩 오른 나는 동생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만! 그만해! 네 말도 옳다! 여자라고 운동선수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어디 한번 서장훈 선수처럼 멋진 농구 선수가 돼 봐라. 잘하면 우리 집에 프로 여자농구선수가 탄생하겠는 걸.

 아빠 말씀에 엄마랑 동생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내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고만 마는 식구들이 정말 미웠다. 솔직히 그 때 나는 조금 더 엄마 아빠에게 더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더 따지지 않고 참았다. 어디 한번 해 보라는 아빠의 말씀은 내 꿈을 믿고 존중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식구끼리 더 이상 큰소리로 말다툼 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 때 내가 더 이상 따지고 들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엄마 아빠 또 동생에게 내 꿈에 대해 얘기할 기회는 또 올 테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식구들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중요 할 테니까.

 불행하게도 내 키가 앞으로 많이 자라지 않아서 농구 선수가 되는 게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내 키가 농구 선수가 될 수 있을 만큼 자라만 준다면 나는 꼭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내가 농구선수의 꿈을 이루었을 때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우리 가족들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식구들의 따뜻한 격려와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멋진 플레이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수상>

나답게 너답게

       

대구시지초등학교

           4학년 8반 강지표

 

  우리 외갓집 제사는 거창하다. 외할머니께서 칠성 시장으로, 서문시장으로, 제삿장을 보러 다니실 때마다 평소에 쑤시고 땡기고 아파서 쩔쩔매시던 관절염도 모두 다 꾀병 같아 보인다. 보통 때 같으면 한번 앉았다가 일어서는 데만 10단계 정도의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으이구, 다리야., 1단계.

  무릎을 편다, 2단계.

  손을 짚는다, 3단계. ……

  마지막

  “후유., 10단계.

  제사장 보는 것만큼 제사상 차리는 과정도 길고도 길고 지루하다. 바로 지난 설날에 그 지루한 제사상 차릴 때 내가 까불었다. 사촌 병준이랑 무진이 오빠랑 장난치다가 외할머니한테 딱 걸렸다.

  “이노무 가시나, 조신하게 못 있나.

  삼촌, 숙모, 언니, 동생들 다 있는데, 너무 창피하고 슬펐다. 어머니의 얼굴이 빨개졌다.

  드디어 큰삼촌이 절을 두 번씩하고 제사가 시작되었다. 숙모들, 이모, 어머니, 언니, 내가 절을 올리고 잔을 치고, 지방을 촛불에 태워 날린 뒤 긴 긴 제사는 끝이 났다. 지방이 불에 타면서 외할아버지의 영혼도 함께 날아갔다.

  그러다 사건이 생겼고 어머니의 화가 폭발했다. 외할머니는 소파에서 쉬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런데 소꿉놀이, 레고 블럭이 소파에 어질러져 있었던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대뜸,

  “지표야, 이노무 가시나. 자꾸 어질래. 어서 치아라.

  “할머니, 그거 무진이 오빠하고 병준이가 그랬어예.

  방바닥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바로 그때,

  “나는 아직 기집애 소리 한번 안하고 키웠는데 엄마는 말끝마다 가시나, 가시나……. 지표가 그래 밉나? 내한텐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식인데 나중에 뭐가 될 줄 알고 가시나, 가시나 카노?

  어머니는 얼굴이 새파래졌다가 빨개진 후 밖으로 나가 버리셨다. 난 실컷 울고 난 후 작은 숙모랑 어머니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테니스장에 어머니께서 앉아 계셨다.

  “형님, 속상하지예.

  “저번에 병준이 아빠가 그라대예. ‘형수가 무진이 젖먹일 때는 아이구, 복도 많은 우리 강아지~마이 묵고 쑥쑥 커야지. 누나가 지표 젖먹일 때는 이노무 손 대강 빨아무라.’ 어머니가 그러셨답니더.

  어머니랑 숙모가 함께 웃었다. 나는 알 듯 말듯해서 따라 웃었다.

  우리 어머니는 옛날에 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부터 딸이기 때문에 밥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래도 공부는 삼촌들보다 더 잘했다. 대학교는 못 갈 뻔 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몇 날 며칠을 울고 불고 우기고 우겨서 겨우 갔다. 그리고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은 당뇨병에 고혈압에, 관절염 때문에 갑자기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외할머니도 정말로 외할아버지 따라 돌아가실까봐 어머니께서 학교를 쉬면서 외할머니를 지켜드리고 있다.

  테니스장은 햇볕이 따뜻했다. 여자하고 남자하고 뭐가 다르다고 딸을 구박하는 거야? 외할머니도 여자면서……. 외할머니는 진짜 못 말린다. 밭에서 마늘을 캐도 제일 크고 좋은 것은 큰삼촌, 작은삼촌 주고, 고구마를 캐도 좋은 것은 다 삼촌들 먼저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른이 되고 어머니처럼 아줌마가 되었을 땐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하셨다.

  “내가 할머니가 되면 살아있을 때 맛있는 거 많이 사 줘.

  “응, 호두과자랑 커피, 녹차, 복숭아, 많이 많이 사줄게.

  내 어머니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이 상상도 안 되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제사는 오빠랑 서로 돌아가면서 지내라.

  “아빠, 엄마가 좋아하는 탕하고 너네가 좋아하는 치킨만 차려도 돼.

  「후박나무 우리집」이란 책에도 나처럼 속상하고, 열 받는 여자아이가 나온다. 남자, 여자 따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남자, 여자가 아니고 사람이다. 남자니까 할일이 따로 있나? 여자라서 꼭 여자답게 보여야 하나? 나는 3학년 때 11역은 우유 당번, 청소는 특별구역인 쓰레기장을 맡아서 했다. 나 빼고는 모두 남자애들이었지만 즐겁게 했다. 남자애들하고 장난치다가 한 대 차이면 정말 눈물나게 아프고, 욕도 좀 배워서 써먹다가 선생님께 혼도 났다. 하지만 내 성격을 잘 아시고 그런 역할을 맡겨주신 선생님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으셔서 참 좋았다. 우리 외할머니 같으면 또 설치고 나댄다고 야단하셨겠지만……. 남자, 여자 구별하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저절로 친구를 돕는 것이고, 서로 즐거워질 수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우리 오빠는 특별한 선물을 내게 주었다. 십자수로 아기공룡 둘리를 수놓은 열쇠고리였다. 우리 어머니는 나보다 더 좋아하셨다.

  “지표는 좋겠다. 이런 오빠가 있어서……”

  학교에서 가정 시간에 배워서 했는데, 꼼꼼한 우리 오빠더러 가정 선생님께서 ‘성자’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다고 오빠는 아주 신경질을 냈다. 이제 알 것 같다. 성훈 오빠가 왜 화가 났는지. 십자수를 여자만 잘 하라는 법 있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도 모르는 사이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답게.

‘나는 나답게.

외할머니 같은 어른들도, 우리들도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우수상>

큰 변화는 작은 배려에서부터

 

영동초등학교

6학년 1반  조윤영

 

  개학 첫날이라서 가방은 알림장과 달랑 필통 속에 연필 두 자루인데 오늘따라 유난히도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윤영아, 알지? 오늘부터 6학년 최고 학년이니까 행동도 멋지고 선생님 말씀도 더욱    잘 듣고 요조숙녀처럼 행동해야 한단다. 5학년 때처럼 왈가닥 소녀라면 선생님들이    안 좋아하셔. 여자는 내숭도 떨고 얌전해야 어른들이 좋아하신단다. 우리 윤영이 파    이팅!

  늦잠을 자서 아침밥도 못 먹고 현관을 나서는 내게 어머니께서 나팔꽃보다 더욱 환하고 상냥하신 목소리로 나의 잠을 깨우셨다.

  그 순간 가방 속에 있는 알림장과 필통이 마치 쇳덩어리처럼 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길거리로 나서니 환한 해님 사이로 아이들이 조잘대며 학교를 향하고 있었다.

  “윤영아!

  뒤를 돌아보니 단짝 친구 동욱이가 헐레벌떡 쫓아오고 있었다.

  “방학 잘 보냈니? 그런데 너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응, 우리 엄마가 또 아침부터 여자는 춘향이처럼 얌전해야 한다고 잔소리 하시는     거 있지.

  동욱이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나는 어떻고! 울 엄마는 나보고 남자가 만날 여자 같다고 잔소리하시는데 지    겨워 죽겠어. 목소리는 그게 뭐냐, 걸을 때는 씩씩하게 걸어라. 왜 여자친구들하고만    노냐, 그러려면 고추 떼라. 지겨워. 그냥 나로, 있는 그대로의 동욱이로 봐주면 안 되    나? 어른들은 참 이상해.

  우리는 학교에 오는 내내 여자와 남자를 선으로 갈라놓고 그에 맞는 행동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부모님들과 선생님, 또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에 대한 토의를 하며 울분을 토하였다. 아직 이른 봄바람이 우리의 두 뺨을 간질이며 지나갔지만 우리는 봄바람에게 인사도 못 한 채 우울한 기분으로 새 학년 새 교실에 들어섰다.

  “야, 너희 둘 사귀냐?

  동욱이와 내가 함께 교실 문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장난 끼 많은 충한이가 놀렸다. 동욱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당황했고 나는 화가 나서 충한이에게 달려가 알밤을 한대 먹였다.

  “함부로 말 하지 마.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으면 꼭 사랑하고 사귄다는 너의 생각은    잘못된 거야. 까불지 마라. 우린 남자와 여자이기 이전에 친한 친구야.

  “뭐가 그러냐? 동욱이는 남자인데도 얼굴이 빨개져서 울려고 하잖아. 그러니까 깡패    같은 네가 도와주는 거잖아. 안 그래?

  나는 어이가 없어서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아이들이 충한이에게 너무했다고 사과하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충한이는 계속 사실이잖아를  반복하며 웃고 있기만 하였다.

  여름이면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주던 쉼터는 앙상한 가지로 봄을 맞이하고 있었고 몇몇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행진곡이 울리고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교장 선생님께서 새 학년 인사를 하시고 담임 발표를 하셨다. 모두들 어떤 선생님이 일 년 동안 우리 선생님일까 기대가 잔뜩인 모습이었다. 우리 반은 예쁘고 착해 뵈는 여선생님이 되었다. 남자아이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저것 봐. 남자애들은 여자들의 얼굴만 본다니까. 호랑이 선생님이어도 얼굴만 예쁘    면 모든 걸 용서해 준다는 표정이잖아.

  교실로 돌아온 우리에게 선생님께서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시고 번호를 정해 주신다고 하셨다. 여자는 항상 남자 뒷번호니까 아직도 내차례는 멀겠거니 생각하며 알림장 빈곳에 하늘을 나는 병아리를 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잘못 부르시는 거 아니세요? 항상 남자의 번호가 빨랐는데”

  아이들의 말에 선생님께선 빙그레 웃으시며

  “이번엔 아니에요. 양성평등 차원에서 일 년은 여자번호가 먼저, 다음에는 남자번호    가 앞에, 돌아가면서 해마다 번호 순서를 바꾸기로 학교에서 결정했어요. 처음엔 어    색하겠지만 며칠만 지나면 익숙해 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말씀에 여자 아이들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5학년 때가지는 항상 번호가 이십 번 뒤쪽이라서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남자들을 따라갔고 실기 평가를 볼 때도 한참을 기다려야했고 순서를 정해야 할 때도 남자들한테 밀려 한참을 줄을 서야 했었다. 우리들은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다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남자 같은 여자가 아니라 씩씩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요조숙녀는 이래야 한다는 어른들의 고정관면에서, 여자남자를 따져서 바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거 같았다. 6학년이 된 것도, 여자로 태어난 것도, 힘이 세서 남자들의 장난을 막아낼 때도 항상 느껴왔던 내가 여자 아이로서 너무 심한 가 자신에게 물어보았던 생각들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자, 오늘은 첫날이니까 자기 소개하는 시간부터 가지도록 하겠어요.

  선생님의 친절하신 목소리는 전깃줄에 앉은 참새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우리 반 모든 여자친구들이 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두들 창가로 놀러온 아침 햇살보다 더욱 환하게 웃으며 윙크하고 있었다.

  “자, 1번 먼저 나와서 자기소개 해 볼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1번이 된 지원이가 씩씩하게 교단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유난히 지원이가 멋있어 보였다. 뚱뚱하다고 남자에게 놀림 받던 지원이가 아닌 당당한  지원이의 모습에 힘차게 박수를 보내본다.

 

<우수상>

백지 한 장의 차이!

 

                                            은척초등학교

6학년 1반 김낙경

 

 “여자가 왜 이렇게 여기저기 나서냐?

 “네가 남자보다 더 잘할 수 있겠어?

 3월 초, 내가 은우와 전교 부회장 후보에 같이 나왔을 때 남자아이들이 나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부회장이 되어 누구보다  학교를 더 잘 이끌어나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내 옆을 살짝 스치고는 그냥 휙 지나가 버렸다.

 “김낙경 27, 남은우 28표로 전교 부회장은…….

 처음엔 내가 앞서갔으나 안타깝게도 마지막 한 표 차이로 부회장에서 떨어졌다.

 ‘내가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아쉬워 한동안 멍하니 투표함만 바라보았다. 전교 회장과 부회장의 당선 소감 발표가 내 귀에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낙경아 괜찮아?

 뒤에 있는 친구가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는 은우에게 마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아이들의 작은 말소리에 나는 상처를 받았다.

 “봐~역시 여자보다는 남자가 되어야 해.

 “낙경이가 아깝긴 하지만 같은 남자가 되서 좋다.

 

 ‘여자보다는 남자?’ 웬일인지 그 말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회장에서 떨어진 것이 여자이기 때문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은우는 정정당당하게 능력을 겨루어 선거에서 경쟁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들을 능력이 서로 다른 후보로 본 게 아니라, 단순히 남자 대 여자로 보았다는 사실에 왠지 마음이 아팠다.

 

 “낙경아 힘내!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선거가 끝나고 선생님께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 주셨다. 그 때 나는 선생님께 묻고 싶었다.

 “선생님! 제가 선거에서 떨어진 것이 여자이기 때문인가요?”라고. 그러나 나는 차마 그 말을 묻지 못하고, 그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낙경아, 오늘 힘들었지? 낙경이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도 충분히 잘한 거야. 선생님은 그렇게 믿는단다. 낙경이와 은우는 둘 다 다른 능력을 가진 친구들인데 이번에는 은우가 부회장이 된 것 뿐이야. 다음번에 또 다른 기회가 분명히 있을 거야. 오늘 너무 수고했다!

 그날 저녁, 일기장에 쓰여진 선생님의 글은 나를 다시 생각에 빠지게 했다. 선생님은 나를 은우와 다른 능력을 가진 아이로 봐 준 것이었다. 여자와 남자로 본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은우에게 진 것이 여자이기 때문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녀의 차이가 아닌, 각자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내가 자라서 아빠가 될 수 없듯이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다르다. 이처럼 남자 여자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하지만 ‘남자여서 되고 여자여서 안 된다’는 막무가내식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개인의 개성과 특성을 무시한 채 성별만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선거가 끝난 뒤 한동안 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 어릴적 작은 기억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낙경아! 엄마 일 좀 도와드려라”

 “아~ 안 된다……. 남자는 방안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거다.

 명절이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나와 사촌 남동생에게 하시는 말씀이 다르셨다. 할아버지의 사촌 남동생에 대한 관심은 유별났다. 남동생에게는 절대로 부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하지만 나에 대한 대우는 속상할 만큼 달랐다. 같이 놀다가 울게 되어도 남동생에게는ꡐ장군감‘이라 하시며 칭찬하셨다. 반면 나에게는‘여자아이 울음소리가 너무 크다ꡑ하시며 자주 혼을 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울음소리로 남녀 차이를 두시다니……. 왠지 공정하지 못한 것 같이 느껴진다.

 학교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3월초에 나와 은우가 함께 나간 부회장 선거가 그 예이다. 무조건 성이 다르다고 해서 싫어하고 적대시해야 할까? 남자아이들의 여자아이에 대한 무조건적 차별과 거부는 고쳐져야 할 태도이다. ‘여자가 무슨 전교 부회장?’이 아니라 ‘남녀구별 없는 능력 있는 전교 부회장!’으로 생각이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이건 여자아이들에게도 해당된다. 연약한 여자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자아이들에게 기대기만 한다면 남자들은 여자들을 무시할 것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열심히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책임감을 가지고 각자의 능력을 키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보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당당하고 자신 있게 생활해야 한다.

 

 그리고 예전의 어른들은 여자 아이에게 간호사, 요리사, 선생님 같은 직업을 권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꿈은 이것만이 아니다. 경찰이 되고 싶기도 하고 경호원 같이 흔히 남자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나 역시 어릴 적에는 비행사가 되고 싶기도 했고 경찰이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요즈음 나의 꿈은…….

 “박준 같은 멋진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꿈을 자주 물으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큰 소리로 말한다.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기도 하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게 나의 가장 큰 꿈이다. 그래서 ‘박준’이라는 유명한 남자 헤어디자이너가 나의 우상이다. ‘박준’이라는 사람은 사람들의 머리를 잘 만지는 멋진 남자 헤어디자이너이다. 보통 헤어디자이너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고정관념을 깬 사람이어서 더 멋지게 느껴진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아들이건 딸이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에 노력을 한다면 원하는 것을 하게 해 주신다. 우리 집은 딸만 셋인 ‘딸 부잣집’이다. 그래서 아빠는 우리 집의 ‘청일점’이다. 그런 우리 집에서 큰언니는 경찰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웃으시며  

 “경찰이 되려면 체력이 튼튼해야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단다”

고 격려해 주신다.

 가끔씩 엄마는 아빠께 설거지를 도와달라고 웃으면서 부탁 하신다.

 “허허, 그럼 한번 해 볼까?

 아빠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 도와야 한다면서 선뜻 고무장갑을 끼신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의 청일점’ 아빠는 집안일에 많은 관심을 보이신다. 그런 걸 보면 자라면서 받게 되는 남녀 차별이 문제인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건네는 어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들 마음속에 큰 편견을 자라게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남자 대 여자? 남자와 여자?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모습일까?

 백지 한 장의 차이!

 바로 그것이 정답이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백지 한 장의 차이와 같다. 신체 조건과 겉모습만 다를 뿐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차별이 아닌,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어 세상을 만들듯, 아빠와 엄마가 있음으로 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여자냐 남자냐 하는 구분은 무의미해 질 것이다.

  세상은 남자, 여자로 구분해서 살아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인간, 너와 내가 자신의 꿈을 이루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기에…….  

 

<우수상>

백문불여일감(百聞不如一感)

 

 대저중학교

2학년 1반 이 지 현

 

 “에 휴, 무슨 남자가 치마를......

 아직 찬바람이 다 가시지 않은 봄, 민혁이의 하루는 투덜거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민혁이는 반달중학교 2학년 2반입니다. 남녀공학이라 교복치마는 매일 봐 왔지만 직접 입어 보기는 처음입니다. 치마를 입어본 민혁이는 어제 담임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내일은 짝지와 교복을 바꾸어 입도록 하세요.’ 그 말을 듣고 반 친구들은 잠시 술렁였습니다. 원래 교복을 바꾸어 입으면 안 될 뿐더러,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여자가 남자 옷을 입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좀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반 아이들 모두가 쑥덕거릴 때 선생님께서 마지막 한마디를 하시고는 종례를 마쳤습니다.

 ‘짝과 교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한 이유는 내일 수업시간이면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내일은 특별 조치를 취해 놓았으니 선도부에게 걸릴 염려는 없을 겁니다.

 교복을 입고 거울을 본 민혁이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치마를 처음 입어본 이유도 있었지만 처음 입어보는 그 치마가 꽤 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민혁이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짝인 슬기와 제일 먼지 눈이 마주쳤습니다. 둘은 서로를 보고 막 웃습니다. 서로의 모습이 웃기고 낯설어서 그렇습니다. 슬기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너 치마도 꽤 잘 어울리는구나.

 “그래? 처음 입어 보는 건데......

 남학생, 여학생이 서로 교복을 바꾸어 입어서인지 오늘 2학년 2반 교실은 시끌벅적합니다. 짝과 서로 깔깔깔 웃는 애들도 있는가 하면, 스타킹까지 신고 온 현석이는 종종걸음을 칩니다. 또 뭐가 불만인지 승윤이는 구석에 혼자 앉아 의자에다가 발길질을 해댑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들어오십니다. 순간 떠들썩하던 2학년 2반은 조용해졌습니다.

 “오늘 교복을 바꾸어 입어보라고 한 이유를 아는 사람?

 아이들은 대답은커녕 오히려 궁금하니 빨리 가르쳐 달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할 수 없이 내가 가르쳐줘야 하나?

 “네”

 반 아이들 모두 동시에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미소를 살짝 짓고는 말씀하십니다.

 “지금 국어 시간에 뭘 배우고 있지요?

 “남, 녀 차별에 대해 토론하고 있습니다.

 반장이자 2반에서 가장 똘똘한 희성이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직접 이성에 대해 좀 더 알고 나서 토론을 하면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 이렇게 입고 오도록 했어요. 불만 있는 사람?

 “저요.

  아까 구석에서 발길질을 해 대던 승윤이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승윤이는 뭐가 불만이지?

 “남자가 여자 옷을 입는다는 것이 자존심 상해요!

 그 말을 들은 2반 여학생들은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재수 없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 승윤이가 남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한가 보구나. 좀 있다가 6교시에 승윤이는 여자 교복을 입어서 불만인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말해줄래? 바뀐 감정이 있다면 함께 말해주면 더 좋고. 승윤이처럼 자기가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불만스러울 때도 있었을 거예요. 평소 자기가 남자거나 여자여서 불만이었거나 이성이 부러웠던 일은 오늘 하루 동안 실컷 해보길 바래요. 알겠죠?

 “네.

 2학년 2반 아이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런 아이들의 눈을 보고 선생님은 장난스러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특히 남학생들, 여자 화장실이나 여자 탈의실에 들어가지는 말아요. 알겠죠?

 “하하하”

 조례가 끝나고 어떤 아이들은 진지하게 남녀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고, 주로 남자아이들은 치마를 펄럭이며 장난을 치고 또 뛰어다니며 이런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상황을 즐겼습니다. 수업시간마다 들어오는 선생님들께서는 재미있다는 식의 웃음을 짓기도 하셨습니다. 수업시간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2학년 2반 학생들은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비록 선생님께서 평소에 이성에게 부러웠던 일을 모두 해보라고 하셨지만 실제적으로 그렇게 부러웠던 일이나 불만이었던 일이 그다지 많이 없었기에 2학년 2반 학생들은 그냥 교복을 바꾸어 입었던 날 정도로만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6교시가 시작되기 전 까지는 말입니다.

 “먼저 교복을 바꾸어 입어본 소감을 말해 볼 사람?

 “선생님! 여자애들 불쌍해요. 스타킹신고 어떻게 하루 종일 있는데요?

유일하게 스타킹을 신고 왔던 현석이의 말에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마 익숙해져서겠지? 신체적 인거 말고 정신적으로 뭔가를 느낀 사람?

 “저요, 선생님”

 민혁이가 말했다.

 “그래 민혁아, 말해보렴.

 “저도 솔직히 처음 치마를 입고 학교에 왔을 때는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선생님께서 무슨 말을 하시려나 했는데요. 교복 치마를 입고 하루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교복을 치마와 바지로 구별 해 두는 것 자체가 남녀차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혁이가 좋은 말을 했구나. 또 다른 사람은 느낀 점 없어요? 그러면 조례시간에 말했던 것처럼 승윤이의 생각을 듣고 본 수업인‘남녀차별 없애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도록 하겠어요. 승윤아 말해볼래? 왜 치마를 입는 것이 자존심 상했니?

 “치마는 여자들이 입는 옷이잖아요. 그런데 치마를 남자가 입는 게 그냥 자존심 상했어요.

 “승윤아, 그건 유교 사상 때문인 것 같구나.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하지만 승윤아 원래치마는 남자들이 입던 옷이란다. 그리고 네 말대로라면 바지는 여자들이 입으면 안 되는 거니?

 “......

 “승윤이는 좀 더 생각해 보고 이제 본 수업에 들어가도록 할까? 남녀차별을 없애는 방법을 얘기해 볼 사람?

 “유교 사상 중에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서‘여자는 얌전해야 되고 남자는 씩씩해야 한다거나, 여자는 남자가 하는 일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같은 생각 말입니다. 요즘에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회사가 많다고 생각 됩니다. 잘못된 것은 뿌리부터 뽑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희성이 생각도 맞는 거 같네요! 자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토론해 보세요.

 맞다고는 말씀하셨지만 선생님의 얼굴은 밝지가 않았습니다.

 “지폐에 남자위인만 넣지 말고 여자 위인도 넣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후보에도 여자가 오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정치가도 남자에 비해 여자가 훨씬 적고, 1~3급 공무원도 1.2%정도 밖에 차지 안한다고 합니다.

 “군가산점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연이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민호는

 “군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대한민국 국민은 남자만 있나요? 나라를 지키는 데는 남녀구분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 꼭 총들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라 판단됩니다. 스무 살 정도 되는 남자 여자 모두가 군대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진짜 지금이 전시상태도 아니고...

 “군대 이야기는 그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신체 조건이 다른데 여자와 남자에게 사회에서 모두 똑같이 대한다면 그건 또 양성평등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여에게 모두 가능한 일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양성평등이라 생각합니다.

  민혁이의 말에 이제야 선생님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하시길,

 “그래 민혁이 말이 맞는 것 같구나. 현실 가능한 조건에서 양성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양성평등이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남, 여에게 하라고 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낳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반 아이들이 사회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러면 우리가 생활하는 학교나 가정에서는 남녀차별이 없니?” “아니오.

  반 아이들 모두 남녀차별을 당한 것처럼 억울하다는 듯 한 목소리였습니다.

 “한데 왜 말하지 않았지? 내 생각은 하나하나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말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하구나. 군가산점이나 남자와 여자 모두 군대를 가야한다. 이런 식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니? 그리고 학교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란다. 우리가 작은 것부터 양성평등을 실천한다면 언젠가는 사회에서도 앞서 말한 중요한 내용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 우리 주변에는 어떤 남녀차별이 있고 왜 그런 차별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체육시간에 언제나 남학생은 축구위주로 수업을 하고 여학생은 피구나 배구 위주로 수업을 해요. 때론 남학생이라도 피구나 배구를 하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여학생이라도 축구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체육부장인 성광이가 말하자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여장부인 희영이는 더 그런 것 같았습니다.

 “또 할아버지 댁에 가면 손자는 예뻐하면서 손녀한테는 뭐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록 그런 경우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제사 지낼 때 남자만 절하는 것도 그렇고......, 이 모두가 유교 사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유교 사상도 좀 가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성이의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남녀차별의 예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동성의 입장에서 말을 하는 것 같네요, 비록 교복을 바꾸어 입어봄으로써 조금 이해하기는 했지만,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이성의 입장에서 살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아마도 동성의 입장에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기 쉬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남녀평등은 이루어지기 힘든 것 같습니다. 무조건 남녀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각각 조건에 맞게 대우하는 것이 남녀평등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남녀평등이라고 주장할게 아니라 이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배려하는 것부터가 양성평등, 남녀평등의 시작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이성의 입장에서 생각만 해 본다고 양성평등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혁승이가 좋은 질문했어요. 이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게 양성평등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갖고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게 양성평등이라는 거예요. 마음으로 느끼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생각이고 아이디어라고 해도 별 쓸모가 없다는 게 선생님 생각입니다. 이건 선생님 생각일 뿐이니까, 여러분 나름대로 양성평등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때마침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습니다. 잠들기 전에 민혁이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양성평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답은 간단하다는 결론을 내린 민혁이는 남녀를 구별 짓지 않으면 뭐든지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처음 치마를 입어본 일도 오래도록 기억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수상>

작은 곳에서도 평등이 이루어지는 세상

 

성안중학교

2학년 10반 김 주현

 

  가끔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좀 남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평소보다 조금은 천천히 그 길을 걷곤 한다. 바쁜 일상에 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밟히게 된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 거리를 바라보면 지나가는 야쿠르트 아주머니,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매일 보는 나무나 심지어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조차도 새롭게 느껴진다.  

 

 그 날도 그렇게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예쁘장한 꼬마 여자아이와 걸어가고 있었다. 꼭 잡고 가는 손이 아름답게 느껴져 입가에는 살짝 미소까지 띄워졌었다. 그 때, 아주머니가 꺼냈던 말은 내가 잠시나마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 엄마가 치마 입으랬지 ! 아니,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바지만 좋아해? 어휴-"

치마를 입어야 되는 게 마치 어린 여자아이의 의무라도 되는 냥 말하는 아주머니의 말투에 속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다면, 남자아이들은 소위 말하는 '여자아이들의 색'인 분홍색이나 노란색의 옷은 입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양성평등을 외치는 어른들이 아직 개념이나 생각이 바로 잡히지 못한 아이들이라고 여자와 남자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요즈음 차별에 대한 인식은 나아졌지만 사소한 차별은 아직 남아 있다.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평등 사회를 이룩하지 못한 것은 여자아이의 엄마처럼 여자는 다소곳한 행동을 위해 치마를 입어야한다는 등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작은 편견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6학년이었을 때, 처음으로 무언가 진정으로 원하는 장래희망을 가지게 되었었다. 방송부에 들어가서 직접 제작. 연출하고, 계획안도 짜보고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알게 된 PD라는 직업이었다. 기계와 제작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하고, 실수로 방송 사고라도 나는 날에는 담당 선생님께 정말 많이 혼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송부에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 후배를 양성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와서도 난 계속 방송부에 있고, PD라는 직을 맡고 있다.

 

 3년째 같은 직업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 시련이라고 없었을까.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외교관이나 의사, 변호사 등 남이 보기에도 멋지고 부러울만한 직업이 곧 엄마가, 또는 아빠가 원하는 나의 장래희망이었다. 과일을 먹으며 TV를 볼 때면 어김없이 나에게로 와 내 두 손을  꼭 잡으시며,

 "주현아, 꿈을 바꿔볼 생각은 없니?"

라며 진지한 말투로 물어보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태연하게 절대 바꿀 생각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상처가 컸다. 단지 여자가 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이유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알아보니 여자는 PD로 거의 채용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방송부에서는 여자가 PD를 거의 맡고 있어서 상상조차 못했던 사실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차이가 있는 것은 인정한다. PD라는 직업이 며칠 밤을 새워야 하고, 세계 오지로도 촬영을 위해서라면 가야하고, 심지어는 '폭력배의 실태' 라는 주제를 촬영하려 조직들의 모습을 몰래 숨어서 잠복근무가 아닌 잠복촬영을 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요즘 읽고 있는 'PD가 말하는 PD' 라는 책을 보면 모두들 남자이다. 어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봐도 PD들은 남자로 비춰진다. 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대놓고 대중매체를 통해 성차별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직업이든 고통과 노력이 따르기 마련이고, 성별에 상관없이 그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사회에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대의 어른들이 남녀차별에 한 몫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옛날부터 차별 받아 왔는데 한 순간에 바뀔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들만 챙기고 손자만 아끼고, 사위만 반기시는 것은 지금 흐르는 흐름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명절 때가 되면 며느리나 딸은 주방에 틀어박혀 요리만 하고, 과일을 깎아 태평스럽게 누워 TV를 보는 아버지께 나르는 것을 보며 자란 아이가 과연 양성평등을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아마, 그런 가장에서 태어났다면 자신도 모르게 남자가 우월하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평등을 실천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이제는 듣지 않지만 예전에는 할머니나 이모할머니께서

 "네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라는 말을 심심찮게 하셨다. 결국에는 그런 말을  한 번만 더 하면 진짜 화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뒤에야 겨우 그 횟수가 줄어들었다. 완전한 양성 평등이 실현치 되려면 결국 사소한 그런 부분에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마치 아직은 어정쩡하고 걷는 폼이 어색한 아이가 엄마 손을 잡으면 아장아장 예쁘게 걸어가는 것처럼, 이미 시작된 첫걸음을 가정, 사회에서 똑바로 이끌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면을 쓰고 다닌다 해도 그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양성평등만을 외친다고 평등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를 깨닫고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는 내가 세상을 바라볼 때 아무런 모순도 찾아볼 수 없기를 바란다. 남성 우월 주의도 아닌 여성 우월 주의도 아닌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후손을 꿈꾼다. 걸어가는 아이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방해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뿐이다. 벚꽃이 꽃비가 되어 내리는 어느 4월에, 그런 작은 소망을 가져 본다. 언젠가는 내 꿈을 이룬 나를 상상하며.

 

 

 

<우수상>

! ! 안녕하세요?

 

군산동원중학교

3학년 6반 이유나

 

햇빛 아파트 103동에 거주하는 그 남자를 아세요? 저는 그 남자의 또 다른 분신인 그림자랍니다. 그 남자는 대학원에 다녀요. 박사일까요, 의사일까요? 보통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그 남자는 간호사랍니다. 그 남자가 자신의 직업을 소개할 때면 저는 항상 마음이 쿵쾅거립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아직도 저는 익숙하지가 않거든요. ‘남자가 어떻게 주사를 놓느냐, 간호사라니 말도 안 된다.’ 라는 등 반응도 가지가지에요.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같이‘ 저 사람 뭐야?’ 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더욱 더 슬퍼요. 저는 그 남자의 분신이잖아요.

그는 항상 열심히 해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파이기도 하죠. 저는 그의 뒤를 365일 내내 따라다니기 때문에 다 알 수 있답니다. 그의 스타일은 귀여운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웃기도 잘 웃고 남 앞에서 애교도 잘 떠는 스타일이지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게 있어요. 사람들은 그가 변태 같다, 징그럽다는 등 안 좋은 표현을 써요. 그는 정말 착한 사람인데도 말이죠. 여자가 애교를 떨면 귀엽다, 사랑스럽다. 라는 등의 정말 듣기 좋은 표현을 쓰면서 왜 남자가 애교를 떨면 그러한 생각들을 가지는 지 의문입니다. 아직도 그의 사회는 제가 이해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더 있는 걸까요?

이런 그 남자에게도 여자 친구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녀는 정말 눈부시게 예뻐요. 그런데 어느 날, 여자 친구가 그에게 말도 없이 소개팅을 나갔었어요.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뭐라고 했죠. 그런데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그는 그녀 몰래 소개팅을 나갔답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남자는 바람을 펴도 봐주지만 여자는 일편단심 한 남자만 바라봐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정말 제 분신이긴 하지만 어이가 없었습니다. 여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잠시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녀가 눈부시게 예쁘다고 말한 저이지만, 저도 가끔씩은 다른 사람이 예뻐 보일 때가 있거든요.  

오늘은 그가 미용실에 가는 날입니다. 덥수룩하게 눈을 덥는 머리를 군대가는 사람처럼 짧게 자르기 위해서 이지요. , 군대하니까 생각이 난건데 왜 여자는 군대를 안 가는 건가요? 물론, 여군이 있기는 하지만 남자처럼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스파르타를 아시나요? 아테네와 접전을 벌인 스파르타라는 고대 국가 말이에요. 스파르타에서는 군대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었다지요? 그래서 그 나라는 여성들도 기본적인 체력과 싸움기술을 갖추고 있었데요. 그 나라는 철저히 다른 나라의 침략에 대비를 한 것이죠. 하지만, 왠지 제가 인간이었고 여자였다면 군대는 가기가 싫었을 것만 같아요.

그 남자네 집은 정말 바쁩니다. 오늘은 모든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거든요. 그래서 그는 그의 어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앉아계시던 할머니께서 버럭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는 영문을 몰라서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것아! 네가 계집아이도 아니고, 뭐 하러 부엌에 들어가는 거냐?

이러시는 게 아니겠어요? 당황한 그는

“어머니가 힘드실 까봐…….

이렇게 말을 했더니,

“참말로, 원래 예부터 부엌일은 여자가 하는 기다. 남자가 부엌 출입을 자주하면 고추 떨어지는 거, 모르나? 퍼뜩 절루 가서 티비나 보고 있어라!

할머님께서는 그를 쫓아내셨지요.

원래 부엌일은 여자가 맡는 것이라고 하시는 할머님과 그런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외적갈등이었죠. 솔직히, 저도 이해가 가지는 않아요. 그러면 요즘 같은 개성화, 다양화된 사회에서 남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여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약, 할머님의 말씀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 사회에 모순이 되는 행동일 것인데 말이죠.

드디어, 온 가족이 모여서 저녁을 먹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부터 막내 고모님까지 다 오신 저녁 식사라서 그런지 저도 떨리더군요. 그때 큰아버지께서 그의 여자친구에 대해서 물어보았어요.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해서 말해주었죠. 적극적이고 활발해서 좋다는 둥, 자신과 잘 맞는 것 같다는 둥. 그런데 진지를 드시던 큰 고모님께서 자고로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이러시면서 그에게 여자친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시는 거 있죠? 순간 없는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정말 눈부시게 예쁜 그녀를 다시 생각해 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이건 그의 분신인 그림자의 권한으로서 취소시킵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제 꿈이겠지요. 암탉이 울면 왜 집안이 망하는 것일까요? , 왜 여성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면 집안이 망하는 거죠? 신라의 선덕여왕은 여자인 몸으로 집안이 아닌 나라를 다스렸으니 신라는 망했어야 했는데, 왜 더 부흥을 했을까요? 여자도 여자 나름의 개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여성의 세심함과 꼼꼼한 면이 더욱 더 집안을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그는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 위해서 집을 나섰습니다. 저 역시 그의 뒤를 따라다녔지요. 그런데 저 쪽에 한 아주머님께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시는 것이었어요. 그는 도와드리고 싶었으나 영화시간에 맞춰서 영화를 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나치는데, 그 때 지나가던 한 아가씨가 “남자가 도와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라며 작게 속삭이는 거예요. 이런 정말 황당했습니다. 왜 항상 남자는 여자를 도와야만 하는 것일까요? 남자의 본성에 담긴 정의감? 의리? 다행히도 그는 못들은 것 같습니다. 그가 들었다면 정말 화를 내었을 거예요. 그는 다혈질이거든요. 저에게 1분 동안이라도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그 아가씨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더라구요.

“ 이봐요, 아가씨. 남자만 도와드려야 합니까? 왜 그런 거죠? 여자도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남자는 힘이 세니까 여자를 도와야만 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필요할 땐 남자 할 일, 여자 할 일 찾고, 안 그러면 양성 평등 찾고…….

그래요, 문제는 양성평등이라는 게, 여성을 보호하는 무슨 묘약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양성평등의 문제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그것이 남성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남자를 향한 여자들의 반항이나 전쟁 선포처럼 사람들이 생각해요. 여성이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남자들도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죠.

결국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고 변화되기를 원하는 그 양성평등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차별의식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는 하나의 사례, 하나의 문젯거리에만 관심을 두고 이야기되기 때문에 여전히 성차별이 행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사람들의 의식자체의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성차별의 문제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둘 다 인간이란 측면에서 두 성을 바라본다면 차별 역시 자연히 없어지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평등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겠지요.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생각하면서 여성은 왜 남성의 부속품이나 장식물쯤으로만 생각하는지, 남성이 여성의 일이나 행동을 하면 왜 멸시를 받는지…….

, 이제 우리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생각의 문을 열어본다면 어쩌면 우리에게 기분 좋은 봄이 열릴 수도 있겠지요.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의 생각의 문을 ‘똑똑’ 두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저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주시면 되는 거예요. , 지금부터 시작해 볼까요?  

(! !) 안녕하세요?”  

 

 

 

 

<우수상>

편견을 버리면 양성 평등이 보인다

 

기성중학교

2학년 1반 김현희

 

재작년 10,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죽음은 두 가지 면에서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첫째는 할머니의 죽음 그 자체이고, 또 하나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느낀 나의 ‘사회적 성’에 대한 슬픈 깨달음이 그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가 임종을 맞으실 곳을 정하고 있었다. 딸네 집은 안 되는 것이라며 일단 제쳐두고, 우리 집과 큰집이 할머니를 모실 집으로 마지막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결국 할머니를 모실 집은 큰집으로 정해졌다. 할머니께서 우리 집을 거절하시고 큰집을 택하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할머니를 모실 수 있다는 것이 기뻤고, 우리 부모님도 할머니를 모시고 싶어 하셨지만 할머니가 큰집을 택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 집에 ‘아들’이 없기 때문-우리 집은 나를 비롯해 모두 3자매이다-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아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마감하기 싫으시다니…….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사실을 시리도록 깨닫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태어났을 때도 기대했던 아들이 아니라서 속이 상해 술을 드셨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 순간 딸로 태어나버린 나 자신이 참 못났게 느껴졌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데 환영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성별’에 달려 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인데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을 큰집에서 보내셨고, 그것으로 폭풍 아닌 폭풍은 지나갔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 할머니의 산소를 찾았을 때 나는 또 한번의 마음 속 폭풍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할머니의 산소 앞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고, 거기에는 할머니의 자식들과 손자들의 이름이 써있었다.  나도 내 이름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비석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내 이름은 없었다. 알고 보니 거기엔 남자들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너무나 충격이었다. 고모들은 할머니의 자식이 아니었나? 나는, 언니들은 할머니의 손녀들이 아니었던가? 그건 마치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같기도 했고,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남녀차별이 이런 것이구나. 여자는 호적에도 오르지 못하고, 시집 가버리면 끝이라던 그 이야기들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남성과 여성간의 ‘차이’와 ‘차별’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여자는 한 데 앉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왜 하필 여자한테 저런 말을 할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다. 여자는 자궁 때문에 하체를 따뜻하게 보온하는 것이 좋고, 남자는 정자 때문에 너무 따뜻하지 않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은 신체나 생물학적 구조가 분명히 다르다. 이것이 차이이다. “나는 여자지만 남녀차별은 싫으니까 끝까지 한 데 앉아있겠어!”라고 우기는 건 어리석은 일인 것처럼,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는 분명히 존중되어야 한다.

반면 ‘남자는 힘이 세고 활발하며, 여자는 꼼꼼하고 조신하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힘이 세거나 약한 것, 활발하거나 조용한 것은 개개인 간의 차이일 뿐, 남녀간의 차이는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생각이 바로 ‘차별’의 시작이다. 찬찬히 생각을 해보면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느 편이 우월하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고, 어느 성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이유도 전혀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런 차별을 당연히 여기며,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근거 없는 차별이 미풍양속이라고 되는 양 떠받들고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남녀차별은 아주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사소한 생각이지만 그 생각을 말로 뱉고, 그 말을 듣고 자라오면서 아무리 틀린 생각이라 해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거짓이라는 의심은 해보지도 못하도록 머리 속에 박혀 버리는 것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편견’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굳어지고 사라지지 않는 것 아닐까?

태어났을 때부터 “이번에도 여자야?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을 듣고 자라는 사람과 “장군감이구나! 우리 집안에서 큰 인물이 나겠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은 분명 자기의 성에 대한 자부심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남자라는 이유로 대접을 받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성공을 하더라도 남자보다는 좀 못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면,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을 알고 있더라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 머리와 가슴 속에는 남녀가 차별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굳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남녀차별로 인해 우리 사회가 겪은 손실은 엄청나다. 사회적 능력이 있는 여성의 재능과 능력이 ‘사회적 성공은 남자가 우선’이라는 편견에 스러져 버렸다. 또한 ‘남성의 직업, 여성의 직업이 따로 있다’는 편견 때문에 수많은 남성과 여성들이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좌절해야 했다.

우리가 흔히 들어 온 많은 말과 당연하다고 여겨온 많은 것들 중에서 옳은 것과 그런 것을 구별해야 한다. 편견과 사실을 구분하고, 사실이 아닌 것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런 후에 남은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양성평등은 우리가 꼭 이루어야할 중요하고 거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편견을 버리고 나의 성, 너의 성을 존중한다면 완전한 양성평등의 사회가 이룩되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수상>

성역할 고정관념의 타파와 양성평등의 실현

 

인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9반 안민주

 

최근 여성부가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학생 다수가 학교 안팎에서 남녀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설문결과는 ‘여자답지 못하게’ 또는 ‘남자답지 못하게’와 같은 언어적 성차별 및 교복 착용에 있어 여학생이 바지를 입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등 학교 운영규정과 교육과정에 남녀 차별적 요소가 잔존해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다수의 학생들이 이를 남녀 차별적 요소로 인식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비슷한 기간에 실시한 중고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ꡐ양성평등의식실태조사ꡑ에 따르면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문화․연예․인테리어․패션 등은 여성성으로, 스포츠․자동차․컴퓨터 등은 남성성으로 인식하는 등 성역할에 대한 기대가 상반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58.9%가ꡐ남자 대표, 여자 부대표ꡑ를 꼽았고ꡐ여자 대표, 남자 부대표'23.3%에 그치는 등 대표성은 남학생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조사에서 드러나는 상반된 결과는 우리가 성차별적 요소에 대해서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구태의연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추종하고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학생들이 양성평등에 관해 우유부단하면서도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의식을 갖는 것이 양성평등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것일까?

 

성역할 고정관념은 크게 전통적, 사회적, 심리적인 면에서 기인한다.  

오래 전 부터 종교, 사회, 문화면에서 역할 수행상의 편의는 남녀차별 의식을 고착화시켜왔다. 우리는 옛날부터 남녀 사이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하는 유교를 숭상하여 왔으며, 사회가 농경 중심으로 치닫다 보니 육체적으로 비교적 여성보다는 힘이 강한 남성이 가정을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그 시대는 이런 상황이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셈이었다. 과거의 이런 의식과 문화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전통적인 관념 아래에서 자라온 우리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내면화되어 왔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통해 뿌리 내린 성역할에 고정관념은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여성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소극적이고 순종적인 모습인 것이 미덕인 것 처럼 여기고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도리어 특별한 일 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남녀에게 요구되는 차별화된 요구와 매스컴과 인터넷 등 각종 매체의 영향 역시 이러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여자 연예인은 항상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오는 반면에 남자 연예인은 터프하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나온다. 심지어 성차별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동등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버 공간 속에서도 이런 성차별적인 요소가 은연중에 존재하고 있다. 한 여성 인권주의 위원회에서는 싸이월드나 미니미, 핫메일의 아바타를 모니터링 한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아바타의 모습이 여성은 지극히 소극적이고 수줍은 자세로 설정되는 반면, 남성들은 주로 정면을 바라보는 진취적인 모습으로 설정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사회 속에서 남성성, 여성성을 끊임없이 강요받고 있으며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실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의 반영인 것을 간과하고 있다.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이렇게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을 이런 관념의 여성상 또는 남성상에 맞추려 한다는 것이다. 과거 전근대 사회에 비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양성평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일부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을 보이며 남성보다는 여성이 훨씬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 보이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는 ‘삼십 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 라는 어느 여학교의 급훈 역시 이러한 심리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성차별적인 요소들만을 문제 삼을 뿐 전통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고착화된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인식과 이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양성평등의 실현은 여전히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을 개선하여 진정한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노력해야 한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합리적으로 수정․보완 되어야 하며 성별에 따른 역할분담은 지양하고 역할을 분담 할 때에는 개인의 성격이나 성향을 존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창조하는 핵심에 있는 개개의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모들이 자녀의 양육과정 전반에 걸쳐 아이들의 개성과 성향을 존중해 주고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배려한다면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지금처럼 성별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결과는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회적으로 은연중에 우리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심화시키는 요소들에 대한 인식은 매우 시급한 문제이며 이러한 것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언론과 매체는 왜곡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형상화를 중단해야 한다. 기업과 사회에서는 한 개인을 평가할 때 성별에 따라 별개의 요소를 그의 능력에 포함시켜 평가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휩쓸리지 않고 개인의 성향에 충실한 삶을 외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언론 등을 통해 끊임없이 주입되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하며 이를 무의식적으로 추종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는 평등지수는 비교적 높게 나타난데 비해 가정 내에서 남녀간의 역할분담 및, 가부장중심의 가정문화 등 여성들은 여전히 차별에 노출되어있다고 한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양성평등을 외치는 한편 다방면에서 내면화된 성역할 고정관념을 그대로 반영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역할 고정관념은 전통적, 사회적, 심리적인 면에서 기인하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시대에 맞는 생각과 행동의 정립, 제도적 개선, 기업이나 언론에서의 선구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각인되어 있는 성역할 고정관념의 탈피와 개성의 존중이 시급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양성평등 실현을 모색해야 한다.

 

<우수상>

연리지(理枝)를 아십니까?

 

수원 효원고등학교

3학년 15반 이지영

 

  밀려오는 졸음을 쫒아내려 교실 창가에 섰다. 3의 긴박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교정의 봄 풍경이 그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다. 꼭 작년 이맘때의 일이었나 보다.

  ‘우르릉 쾅쾅’

먹구름이 인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린다. 비가 되게 오려나 보다.

베란다 쪽으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바깥은 봄 햇살이 따사롭다. 4월의 햇살을 머금은 매화꽃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창 안 쪽에는 비구름이 감돈다. 바야흐로 엄마와 아빠의 부부싸움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휴일마다 자주 보는 우리 집 풍경이다.

  “아니 휴일에는 집안 청소도 좀 하고 가사일 좀 도와주면 안돼요?

엄마의 날카로운 공격이 시작됐다.

  “일주일 내내 힘들게 회사일 했는데 휴일 날 제대로 쉬지도 못하나?

아빠는 소파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받아 넘기신다.

  “누군 일주일동안 놀았어요? 나도 매일 집안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요.

  “그래도 집 안 일은 여자가 하는 거잖아. 대신 남자들은 나가서 힘들게 일해서 돈     벌어 오구.

드디어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아빠, 엄마,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식구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언니는 고3이라 일요일인데도 서둘러 학교로 갔다. 나는 내방으로 들어와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성에 따라 정해진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의 일과 남자의 일, 과연 일에도 미리 정해진 구별이 있는 걸까? 왜 빨래나 육아, 청소는 여자의 일이고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남자의 일이라고 생각할까? 현대를 퓨전(융합)의 시대라고 한다. 음식이나 문화 활동뿐만 아니라 직업, 사상과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서로 융합되어지는 시대다. 동서고금이 혼합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때는 성의 구분도 모호해지는 모노이자 유니섹스의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구태의연하게 성을 나누고 다른 성에 대한 편견을 가진다는 것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인 것 같다. 각각의 성에 대한 장점을 융합하여 얻어지는 시너지효과로 우리는 현재보다 더 나은 문화와 생활양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같은 것끼리의 융합은 별 의미가 없다. 물에 물을 타봐야 물이고, 술에 술을 타봐야 술이다. 본질은 바뀌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 고집과 편견의 양만 더 늘어난다.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공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국악에 클래식을 섞고 클래식에 팝을 섞으면 새로운 가락의 세계가 생긴다. 크로스오버, 즉 서로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듯 양성도 서로를 규정짓지 말고 같이 어우러지는 그러한 변화의 장을 마련하여야 한다. 자기의 역할이 정해져 있고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매여 있는 한 우리는 새로운 음악의 세계에 대한 희망을 접어야 할 것이다.

  높은 언성이 오가던 거실이 좀 조용해졌다. 살짝 거실로 고개를 내밀었다. 일단 큰 비바람은 지나간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냉랭한 기운이 돈다. 엄마는 아침 식사를 정리하시고 다용도실에서 분리수거를 하신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계신다. 나는 살짝 나가 아빠 옆에 가서 말을 붙였다. 아빠는 내가 막내라 그런지 고2가 됐는데도 나를 귀엽다고 하시며 내 말을 잘 들어주신다.

  “아빠, 할아버지 산소에 갈 때가 되지 않았어요?

  “으응? 산소? 음 그러고 보니 한식이 다 되었네.

  “그럼 엄마랑 우리 산소에 가요. 오늘 날씨도 무지무지 좋아요.

  “그럴까? 엄마한테 여쭤봐라. 가려는지.

아빠가 엄마 표정을 흘깃 살피시며 말씀하셨다. 직접 말하기가 멋쩍으신 것 같다.

  “엄마, 아빠랑 할아버지 산소에 갈 거니까 준비하세요.

  나는 엄마 의향도 묻지 않고 그냥 결정된 듯이 말했다.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최고다. 역시 엄마는 마지못해 못이기는 척 따라 나서셨다. 할아버지 산소는 용인에 있다. 그래서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엄마는 아빠랑 다투신 뒤라 기분도 풀고 포근한 봄기운도 느끼실 겸 나서신 것 같다. 길거리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가는데 갑자기 경적소리가 요란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사거리 한복판에서 어떤 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었다. 가만 보니까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는 중에 신호가 바뀐 것 같다. 반대편 차가 기다려 주지 않고 지나가니까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아빠가 무심코 한마디 하셨다.

  “아이고 어느 아줌만지 혼쭐나는구먼.

그 소리에 엄마가 퉁명스레 한마디 하신다.

  “당신이 아줌만지 아저씬지 어떻게 알아요? 무조건 잘못한 건 다 여자래.

  “보나마나지 뭐.

  초보는 아줌마나 아저씨나 똑같다. 나는 지나가면서 차창으로 그 차의 운전자를 분명히 보았다. 쩔쩔매고 있던 그 차의 운전자는 운전대를 너무 힘 있게 잡고 있어 밖에서 보면 마치 마네킹 같아 보이는 아저씨였다.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마치 ‘앞으로 나란히’를 한 것 같은 자세로 보아 아마 초보운전이었던 것 같다. 왜 실수를 하는 건 여자라고 먼저 생각할까? 여자라서 아줌마라서 그럴 거라는 생각, 우리의 선입견이 문제다. 아빠의 무심코 던지신 한마디가 나에게도 그리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사회활동의 영역이 아직도 남성에 비해 많이 부족한 여성이 운전을 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고 그에 따라 초보운전이나 운전 실력이 좀 떨어지는 여성이 많을지라도 ‘무조건 운전을 못하는 건 여자다’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산소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진짜 봄이 와 있었다. 푸르른 풀밭과 그 사이에 고개를 삐죽 내민 이름 모를 들꽃들. 계절은 또 다시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었다. 아빠는 열심히 벌초를 하셨다. 겨우내 떼가 죽은 곳은 다시 입히고 쑥도 뽑고.....

  아직 그리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땀을 많이 흘리셨다. 엄마는 준비해 온 커피를 끓이시는 게 성묘의 전부다. 집에서도 전등을 갈고 못을 박는 일은 전부 아빠의 몫이다. 즉 힘이 들어가고 조금 위험한 일은 당연히 아빠 아니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나는 일손을 거들 양으로 아빠 곁으로 가서 모종삽질도 하고 움푹 파인 곳엔 흙을 퍼와 메웠다.

 “지영아 손 다친다. 아빠가 할 테니 너는 엄마하고 쉬고 있어라.

아빠는 내가 걱정되시는지 하지 말라고 하신다. 엄마와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신다. 그런데 내가 아들이었어도 그렇게 생각하셨을까? 아마도 벌초하는 법을 배우라고 일부러라도 시키셨을 것 같다. 나는 아빠께 괜찮다고 하고 끝까지 할아버지 산소의 새 봄 단장을 끝냈다. 콧등에 땀이 송송 맺혔지만 말끔해진 할아버지의 묘소가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돌아오기 전에 할아버지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눈을 감고 묵념을 하다가 문득 집에서 지내는 할아버지 제사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적에 돌아가셨다. 유난히도 나를 귀여워하셨던 할아버지셨기에 나는 할아버지 제사 때도 꼭 절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제사 때 절을 올리지 못했다. 그 때부터 여자는 왜 제사를 모시지 못하는 가에 대해 많은 불만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제사 문화를 가진 유교적 국가이다. 즉 자식 중에 반드시 남자가 있어서 제사를 지내야 하고 또 대를 이어야한다는 아주 뿌리 깊은 전통사상을 가진 나라이다. 즉 아들이 없으면 대가 끊겨 큰 일이 난다. 죽어서 조상을 뵈올 낯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나중엔 제사 밥도 못 얻어먹는 아주 궁핍한 귀신이 된다는 샤머니즘적 민족 정서를 가졌다. 그래서 옛날에는 아들을 못 낳아 소박맞는 여자들도 많았고 더 크게는 아들이 없는 것으로 인한 역사적 환난까지도 일어났었다. 아빠는 장남이시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제사를 지내신다. 그래도 우리 아빠는 아들 이야기도, 아들을 보기 위해 내 동생이 될 셋째를 낳으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죽어서 젯밥 차려줄 데 없으면 딴 친구 집 가서 조금 얻어먹지 뭐.

하면서 웃으신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건 가까운 친척들이 한자리에 화목하게 모일 기회가 적어지는    거지. 그래도 정 그게 아쉬우면 너희가 지내면 되지. 안 그래?

아빠는 제사가 조상을 기리고 모신다는 의미 외에도 온 가족이 화목하게 모여 덕담을 나누고 가족애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제사에 여자 남자를 가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셨다. 아빠의 말씀이 맞다. 그런데도 왜 나는 할아버지 제사에 절을 할 수 없는 걸까? 왜 제사는 꼭 남자가 지내야 하는 걸까? 모든 제사음식은 여자가 힘들게 만들지만 진정 제사상에는 절 한 번 하지 못한다. 모두들 말씀은 피하시지만 부정이 타서 그럴까? 그럼 여자는 왜 부정이 타고 남성은 왜 그런 부정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는 걸까? 이것이 옛날부터 내려온 관습 때문이라면 우리 사회에서는 더 이상 잘못된 것을 고칠 방법이 없다. 전통이라면 잘못된 것도 무조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전통은 과거 풍속의 한 형태로 박물관 속에나 보존되어야 하는 것이지 사회전반의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양식으로 계속 유지되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묵념이 끝나고 우리 가족은 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기우는 해가 아직도 따사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작년 봄 우리 가족의 어느 휴일 풍경이었다. 이렇게 가끔씩 먹구름이 지나가던 우리 집 풍경은 작년 언니의 수능시험을 계기로 상당히 바뀌었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이 그동안 우리 자매의 교육이나 입시는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었다. 그런데 언니의 수능 결과가 조금 실망스럽게 나오자 아빠와 엄마는 교육문제와 언니의 대입문제로 평상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허리케인을 일으키셨고 나는 예전보다 훨씬 오래 동안 내 방을 지켜야만 했다. 태풍이 지난 후엔 시계가 더 청명해진다던가? 그 후로 아빠는 엄마에게만 교육의 책임을 지게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건 엄마가 못 하셔서가 아니라 엄마가 많이 힘들어 하신다고 느끼신 것 같았다. 그날부터 아빠는 집에 오시면 컴퓨터와 붙어 있는 시간이 엄청 많아지셨고 언니와 나의 교육문제와 학교생활에 대해서 엄마와 상의하는 시간도 부쩍 느셨다. 컴퓨터가 능숙하지 못한 엄마는 아빠가 바쁘게 입학정보를 찾고 인쇄를 하시는 동안 아빠 대신 전등도 갈아 끼우시고 간단한 못질도 하셨다. 아빠는 예전처럼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신다. 엄마가 어떤 때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지를 이제 조금은 아시는 듯 했다. 또 휴일이면 집안청소도 하시고 침구도 정리하신다. 엄마와 장도 같이 보러 다니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빠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으시다 우연히 교육 사이트, 여성 사이트에 나온 여성들의 차별에 대한 불평과 푸념, 속상한 이야기들을 읽어 보시고 많은 공감을 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아빠의 변화를 인터넷의 힘이라 해야 할까?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데서 나온 힘이다. 부족한 것을 서로 보완해 주고 나누는 힘 말이다. 이것이 어느 정치인이 말한 상생이라는 건가 보다. 상생은 정치보다 양성평등에 더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예전보다 아빠의 외모에 더욱 신경을 써 주신다. 낮 시간엔 시간제 아르바이트도 하신다. 그리고 ‘돈 버는 게 이렇게 힘 드는 줄 몰랐다.’라고 하신다. 술은 입에도 못 대시던 엄마가 이젠 종종 아빠랑 술도 드신다. 이제 아빠는 같은 여자인 나보다도 엄마를 더 잘 이해하신다. 그리고 아쉽지만 이젠 내 말보다 엄마 말을 더 잘 들어주시는 것 같다.

  관심을 갖고보면 이렇게 우리 주위에는 무심히 행해지는 성차별이 너무도 많다. 양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양성간의 우열을 따질 것이 아니라 각 성의 특성을 서로 존중하고 그에 맞는 각종 기회와 선택을 균등히 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여성과 남성은 각각 상대방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상대방에 대한 배척이나 무시보다는 배려하고 협조하는 동반자로서 서로를 보완하여야 한다. 각자의 영역에 높은 울타리를 쳐놓고 그 경계를 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연리지(理枝)란 맞닿은 두 나무가 서로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이다. 숲 속의 좁은 공간에 있는 두 나무는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나무보다 더 커야하고, 가지와 잎을 많이 자라게 해야 한다. 자연히 다툼이 일어나고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생기면 나무들은 우선 가지부터 들이밀게 된다. 서로가 부딪치면서 맞닿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자기만 살겠다고 밀쳐대지만 서로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협조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메워나갈 수 있도록 아예 몸을 합쳐 한 나무가 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가지가 서로 붙어 두 나무가 한 몸이 된 것을 연리지라고 한다. 마치 두 나무가 손을 잡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양성은 세상이라는 공간에 가까이 마주 선 두 그루의 나무와도 같다. 양분은 같은 토양에서 취하지만 아직까지는 딴 몸이다. 그래서 상대보다 더 많은 기회와 위치를 확보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여성과 남성은 좁은 공간에서 손을 맞잡는 연리지가 될 것이다. 서로 모자라는 수분과 양분을 나누어 쓰며 각자의 나무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한 몸이 되어버린 양성 연리지가 되는 날을 기다려 본다.

 

<우수상>

시선을 돌려보면……

 

경산여자고등학교

3학년 1반 최은경

 

  전 세계에 ‘여성의 힘’이 불어 닥치고 있다.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 앙겔라 메르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매 해 선출되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부장관에서부터 우리나라의 한명숙 국무총리 지명자와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까지. 정계를 대표하는 이들은 여성의 지위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의 힘은 정계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군사관학교나 경찰대학교와 같은 특수 교육 대학의 수석 입학생과 졸업생이 모두 여성이며, 각종 고시 시험에서의 수석합격 역시 대부분이 여성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 활동률은 약 50%에 달한다. 전체 여성의 절반에게 직업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서 주장한다. 남성만큼 여성의 지위도 대등하게 성장했으므로 ‘양성평등’은 실현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높은 곳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려보면 현실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성의 지위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만으로 남성과 여성이 대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의 사회 속에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의 기회가 넓어지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대기업에서 여성 직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남성 비율에 월등히 낮고 승진할 기회도 적으며 임금을 더 적게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여전히 명절 때면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남성의 경우, 여성으로 인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여성과 관련된 차별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남성의 차별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남성들이 대부분 하는 일에 여성이 참여하는 것은 이해하면서, 여성이 하는 일을 남성이 하고 있으면 으레 이상한 시선을 보내거나 사상이 불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과 남성들은 모두 자신들의 관점에서만 주장한다. 여성은 여성의 편에서, 남성은 남성의 편에서 서로를 헐뜯으며 상처를 주고받는다. 여성은 사회의 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우월 의식이며, 따라서 진정한 양성평등의 실현을 위해서는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남성들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남성은 또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들이 여성의 입장만 생각하고 남성들이 역차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서 여성들의 이기적인 태도를 먼저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로의 잘못된 것을 비판하기 전에 각자의 입장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각자에게 잠재되어 있는 의식과 은연중에 드러나는 태도가 우리 사회의 차별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약하니까 당연히 저 남자가 내 짐을 들어주겠지.’ 하며 그 남자가 짐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로, ‘여자는 남자보다 힘이 없고 약하니까 저 짐을 들어주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차별 문화가 근절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잘못된 의식은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이나 의식만 꼬집어내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각자의 입장을 돌아보고 자신의 잘못된 의식부터 뉘우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로서로의 입장을 돌이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하다. 여성은 남성의 입장에서, 남성은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협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가족회의를 하는 것과 같이 정기적으로 가족끼리 모여 서로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가족끼리 꼭 이것을 의논하기 위해 굳이 따로 시간을 내서 모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이야기 할 수 있고, 모두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거실에 모였을 때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때는 그동안 은연중에 가족의 구성원 중 누군가가 차별을 받았거나 또는 차별을 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그 때의 느낌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생활할 때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 서로서로 하는 일을 바꾸어 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누군가를 이해할 때, 직접 상대방이 하는 일을 대신 해봄으로써 그들을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남편이 아내의 설거지나 빨래를 해 보고, 아내는 남편이 기계를 고치는 것 등을 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자가 해야 할 일과 남자가 해야 할 일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집안일을 하게 되면서 가정에는 양성평등의 씨앗이 커져갈 수 있다.

 

  학교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각자의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 ‘내가 만약 여자라서 임신을 하게 된다면’, ‘명절이 되어서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일만 해야 한다면’과 같은 주제로, 그리고 여자의 경우 ‘나는 남자면서 네일 아티스트인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곁눈질 한다면’, ‘내가 군대를 가게 된다면’과 같은 주제를 정해놓고 상대방처럼 차별을 받는 입장이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해본 뒤 그 상황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이 요구된다. 선생님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선생님들께서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으레 여자가 하는 일과 남자가 하는 일을 나누어서 이야기를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여자는 어문학계열이나 가정학계열 쪽으로, 남자는 공학이나 의학계열, 경영계열 쪽으로 가는 것이 안정적이고 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관례를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여자 학생이 또는 남자 학생이 그동안의 관례를 거스르는 곳으로 가고자 할 때, 그 말 한마디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고 결국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그동안의 관습을 따르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여자도 충분히 공학계열에 가서 성공할 수 있다고, 남자가 섬세함을 요구하는 미용계열이나 또는 가정학계열로 가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호주제 폐지’와 ‘양성평등채용목표제’와 같이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으로 예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사회에 양성평등의 문화가 정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양성평등 문화를 실현하는 데 있어 법제도와 같은 것들이 차별을 조성하는 원인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법제도의 개정과 같은 국가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은 ‘남자’여서가 아니라 나와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행해져야 한다.

 

  남성과 여성에게는 분명히 태어날 때부터 생리적, 육체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는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근본적인 것이다. 그 차이를 가지고 누가 더 나은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여자와 남자라는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고 차별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협력하며 배려함으로써 더 나은, 더 발전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수상>

양성평등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거제고등학교

3학년 2반 조은화

 

지난 해 한 여고생이 “남성만 현역 사병으로 입대할 수 있게 한 것은 양성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헌법 소원을 냈다. 그러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여성의 군입대 의무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그 즈음 나는 지방방송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청소년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토론주제는 시사적인 이슈를 반영하여 ‘여성 군입대 의무화’로 정해졌다. 그날 토론자들은 ‘남녀평등’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는데 토론자들에 따라 ‘남녀평등’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양성평등이란 남녀가 성에 의한 법률적․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에 부합하는 법률적․사회적 제도를 마련한다고 해서 양성평등이 이루어질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남녀 불평등의 원인이 되었던 요인들을 살펴보자. 원시시대 여성은 출산과 함께 모유수유로 인한 가사 일을 담당하였고 남성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집밖으로 사냥을 나갔다. 이러한 성역할이 조선 초기까지는 완화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통치이념인 유교는 여성으로 하여금 남편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정절을 요구하였고 이것을 실천하는 이에게는 열녀문을 하사하였다. 그리하여 여성은 가문의 희생양으로서 차별적 불평등의 관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여성의 교육은 단순히 남편의 내조를 하는 정도에 그쳐 여성 스스로 삶을 변화, 발전시키려 노력하기보다 남성에게 기대어 행복을 얻으려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생겼고 남편에게 순응하는 아내가 사랑받는 아내라는 고정관념이 되어 남성이 요구하는 현모양처에 만족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차별과 고정관념들이 사회 문제로 크게 부각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에 비해 현재는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고 성적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만큼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성차별 사례를 살펴보자.

“남자는 눈물 흘리면 안돼., “여자가 칠칠하지 못하기는…” 등은 일상에서 흔히 하는 성차별적인 발언이다. , 길거리에서 운전자들이 “여자가 뭐하러 운전을 해, 집에서 애나 보지.”나 회사에서 “결혼한 여자들은 이래서 안돼.”라는 말 또한 엄연한 성차별적인 발언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의식 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는 관념은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두루 퍼져있다.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들의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양성평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부터 먼저 평등의식을 싹틔워야 한다. 부모가 성에 의한 가사를 구분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남녀가 가정에서 하는 역할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줘야 한다. 아버지가 요리를 하고, 건조대에 빨래를 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아이에게는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로 지금껏 만연하던 성차별적 사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교육기관의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양성평등 교육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 사회에서 지녀야할 기본적인 윤리와 인성을 함양하는 곳이기도 하다. 교육기관의 양성평등 교육은 가정에서 싹틔운 양성평등 의식을 더욱 확고히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행여 가정에서 소홀했다 하더라도 학교가 교육을 통하여 올바른 성평등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우선 유치원에서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성평등 의식을 함양한다. 예를 들면 아동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꿉놀이 유치원 교육과정에 의무적으로 포함시켜 가정에서의 남녀 역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음을 자연스레 익히게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교과서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지식을 전달 받는 교육이 행해지므로 교과서부터 성차별적 직업이나 그러한 인식을 담고 있는 말과 행동이 표현되어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지금의 교과서는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시고 아버지는 신문을 읽으십니다.”와 같은 글귀나 남성을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반면에 여성은 소극적이고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예를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사소한 표현들이 무의식적으로 학습되어 어린이들의 고정관념을 만들 수 있다.

중학교의 양성평등 교육은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토론, 글짓기, 연극 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일방적인 지식 전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양성평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사례발표를 권장함으로써 과제를 수행하는 중에 스스로 양성평등에 대한 폭넓은 사고와 평등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의 양성평등 교육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방향으로 행해져야한다. ‘가정’ 교과는 그러한 부분에서 가장 적절한 과목 중 하나이다. 6차 교육과정에서 가정은 가정별 필수과목으로 남학교에서는 거의 선택하지 않았지만 7차 교육과정에서는 1학년 때 기술․가정으로 통합하여 필수과목으로 채택하였다. 하지만 23학년의 경우 여전히 선택과목으로 남아있다. 가정교과는 실제 가정생활 중 필요한 지식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가정교과는 여성위주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남학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므로 성별에 의한 교과이수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디면 그들이 나중에 가정을 구성할 때, 가정생활에서 필요한 지식을 많이 가진 여성이 가사의 많은 부분을 맡음으로써 현재 가정생활의 성적 불평등을 개선할 수 없음을 주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사가 남녀 모두의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학생들도 흥미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드는 것도 양성평등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고등학교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는 최종 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학생들의 직업 선호도를 보면 성별 차이가 뚜렷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현상을 완화시키고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상태에서 진로를 선택하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을 장려한다면 직업의 성적인 편견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양성평등 교육의 바탕에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차별과 차이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차별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물학적 특성과 가치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성들 또한 권리를 찾는 대신 권리에 따른 의무도 다해야 한다. 권리를 주장하면서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는 것은 역차별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권리를 찾기에 앞서 역차별을 야기하는 주장이 아닌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남녀평등을 이루는 것은 여성부나 국회의원만의 임무가 아니다. 왜냐하면 양성평등을 위해 여성을 배려하는 제도가 자칫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으며 제도나 정책만으로는 완전한 양성평등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의식 속에 박혀있는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양성평등은 남녀 모두의 관심과 적절한 비판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두르지 말고 점진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려상>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조화로운 삶

 

인천 동막초등학교

6학년 3반 최진호

 

한자 중에는 ‘사람 인()’이라는 글자가 있다. 그 한자의 오른 쪽 획은 남자이고, 왼 쪽 획은 여자를 뜻하여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의지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가 간호사를 하거나, 여자가 경호원을 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선진국들을 보면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를 외치며 여자를 배려한다. 또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손녀보다는 유난히 손자만 사랑해주시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나의 할머니께서도 명절날 맛있는 음식이 담겨있는 접시를 사촌 오빠 앞으로만 자꾸 밀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서운하여 눈물이 날 뻔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여성으로서 양성평등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얼마 전 신문을 보았다. 내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여자 국무총리가 탄생했다는 기사였다. 그 기사를 읽고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다른 나라에는 오래전 생긴 여자 정치인이 우리나라에서는 타르야 할로넨처럼 여자 대통령, 여자 정치인이 왜 나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나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여성이 국무총리가 되는구나!,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십시일반’이라는 책을 읽다가 남녀차별에 관한 짤막한 만화를 읽었다. 한 석봉에게는 석봉보다도 영리한 여동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석봉은 후손 대대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고, 그의 똑똑한 여동생은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우리 역사 상에 아까운 인재를 잃은거와 다름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느꼈던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이렇듯 남녀차별은 유교를 숭배하던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예법으로 시작하여 남과 여가 차별되기 시작하였다. 남자는 대를 이을 자손이라 하여 받들지만, 여자는 그저 여자란 이유로 무시하며 지내왔다. 옛날에는 며느리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시댁에서 쫓겨나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 사람은 이것을 잘 하니깐, 이 사람은 몸이 약하니깐 등으로 개인의 능력과 취미, 특기를 바르게 알고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급에서도 여자보다 힘이 더 약한 남자 친구들도 있고 여자들보다 바느질을 잘 하는 남자 친구들도 있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인정하며 살아갈 때 조화로운 삷이 되는거지 무조건 여자라 안된다. 남자가 그런일을 하면 안된다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양성평등을 위한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이 남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점을 이해하고 서로의 장점을 찾아서 부족한 점을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남녀 차별을 따질 것이 아니라 남과 여 모두 힘을 모아 아름다운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하고 남녀 가리기보다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남녀 할 수 있는 일을 따로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양성평등은 한 걸음 더 가까워 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양성평등의 길로 접어들기 위한 이 지나친 외침이 역효과를 일으켜 미래에는 현재의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해 달라는 것이다. 여자가 우대받고 남자가 괄시받는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지나친 외침, 과도한 운동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려상>

‘남녀 차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넘어서기 위해

 

인천송림초등학교

6학년4반 권영은

 

얼마 전에 EBS TV에서 'TV로 보는 원작동화'란 프로를 봤다.

주인공인 수지는 어려서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할머니께 항상 구박을 받는다. 딸로 태어난 것이 억울한 수지는 전학을 하면서, 새로운 학교에서는 남자로 살기로 결심한다. 머리를 남자처럼 자르고, 남자 옷을 입고, 남학생 화장실을 사용하며, 완전히 남자가 되어 생활을 한다. 하지만 수지는 가슴도 나오고 생리도 하며 점점 여자가 되어가고, 결국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생기게 되어, 다시 여자로 살고 싶어진다. 수지가 좋아하는 그 남자 친구 역시 수지를 남자로 알고 있으면서도 좋아하게 돼버려서, 남자를 좋아하는 자기 자신 때문에 고민에 빠지고, 아이들의 일기장을 보고 수지와 남자친구의 고민을 알게 되신 담임선생님은 수지의 할머니와 상담을 하게 된다. 수지의 남자동생이 수지보다 씩씩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지를 구박했었던 수지 할머니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시게 되어, 수지와 화해를 한다. 수지와 수지의 남자 친구는 즐거운 마음으로 수지가 여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난 이 프로를 보면서 아직도 많은 어른들이 남녀차별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다. 또 자신의 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녀차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남녀 차별이 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틀린 생각이다.

황산벌전투에서 신라를 승리로 이끈 화랑은 원화에서 시작되었는데, 원화란 아름다운 두 명의 여자가 이끄는 단체였다. 또한 선덕여왕, 진성여왕, 진덕여왕 등과 같이 여자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 때도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손 변의 재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재산상속도 남녀 구별 없이 똑같이 이루어졌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재산은 결혼한 누나에게 물려주고, 일곱 살인 남동생에게는 검은 옷 한 벌과, 모자 하나, 신발 한 켤레, 종이 한 장만 남겨주자, 남동생이 커서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해서 열리게 된 재판이다.

하지만, 조선시대가 되면서 유교사상이 들어오고, 또 제사를 모시는 큰아들을 중심으로 재산이 상속되어 아들을 중요시하면서, 조선중기 이후 남녀차별이 심해지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남녀차별이 여자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지만,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혹은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생각 자체가 모두 남녀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예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경찰을 생각하면 남자가 떠오르고, 간호사는 여자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씩씩한 여자경찰도 있고, 상냥한 남자 간호사들도 생기고 있다. 직업선택에 여자와 남자의 차별이 사라지고 있다. 여자라고 승진을 안 시켜 주거나, 아예 여자라고 뽑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기쁘게도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가 임명되기도 했다. 앞으로는 여자 대통령도 나왔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차별도 존재한다. 대부분 힘쓰는 일은 남자들이 하고, 여자는 남자들에게 보호받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남학생들은 책상을 나르고, 여학생들은 가위질하고, 글씨 쓰는 일 같은 것을 한다.

하지만 남자이면서 가위질과 글씨 쓰는 일이 좋을 수도 있고, 여자이면서 힘쓰는 일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여자인 나로서는 편해서 좋긴 하지만, 때로는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서 기분이 나쁘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연약한 사람만 보호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무엇보다 더 많은 차별을 받는 곳은 집인 것 같아, 참 놀랍다. 집안일은 엄마들의 몫이고, 돈을 벌어오는 것은 아빠라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함께 직장생활을 하셔도 집에 돌아와서 우리를 챙기시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것은 엄마들이고, 아빠들은 도와주실 뿐이다. 함께 직장에 다니시면 집안일도 함께 하셨으면 좋겠다. 그럼 엄마들도 훨씬 더 상냥해지시고 행복해하실 것 같다. 상황에 따라서 엄마가 직장에 나가시고, 아빠는 집안일을 맡아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요즘 아빠들은 육아휴직을 쓸 수도 있다.

또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만 좋아하셔서 손녀를 낳으면 섭섭해 하신다. 우리 할머니는 딸만 네 명을 낳고 마지막으로 우리 아빠를 낳으셨단다. 딸만 네 명을 낳는 동안 많은 구박도 받으셨단다. 하지만 다시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엄마가 아들을 낳아주기를 몹시 바라셨단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딸인 나를 낳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가장 처음 했던 말씀이 “죄송합니다.”였단다. 나를 낳은 것이 죄송하다니……. 하지만 그렇게 죄송하게 태어났던 나는 벌써 6학년이 되었고, 지금은 모두들 나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사랑해주신다. 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더 이상 나를 낳은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인 집안에서도 남녀차별이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를 무엇보다 사랑해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때로는 부모님까지도 남녀차별을 하시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이외의 장소에서도 남녀차별이 이루어진다면 그것 또한 막아야 할 것이다.  

단지 남자로 태어났거나,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차별을 받는 일은 올바르지 못하다. 성만 다를 뿐 모두가 같은 사람인데, 고정관념을 가지고 이건 남자가 해야 한다, 이건 여자가 해야 한다고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거나, 여자는 반드시 남자에게 대접받아야겠다는 생각도 버려야겠다. 남자라고 해서 남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여자라고 해서 여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서로 조금씩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의견을 양보하면 남녀평등은 쉽게 해결되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 여자가 아니라 사람들 각자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남녀차별은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장려상>

우리 집 대장 할머니

 

대전유천초등학교

6학년 5반 이호준

 

  “사내대장부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져 이놈아!

오늘도 우리 할머니는 부엌에 있는 나를 보시며 한바탕 호통을 치신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볼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다. 그 말은 바로 ‘사내대장부’다. 내가 다쳐서 울려고 하거나 부엌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으려 해도 사내대장부가 나온다. 우리 집에선 ‘사내대장부’가 꼬리표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나는 왜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할머니께서 싫어하시고 엄마가 꾸중을 들으니, 부엌에 들어가려면 왠지 눈치가 보인다. 할머니께서는 우리 집에서 제일 어른이시다. 엄마도 할머니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다. 그래서 집안일은 모두 엄마 몫이다.

  ‘엄마도 일하고 돌아와서 피곤하신데, 혼자만 부엌일을 하시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여태껏 아빠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제는 엄마가 외갓집에 다녀오시면서 이모가 준 헌옷들을 가져오셨다. 형은 중학생이라 키가 커서 이모가 입던 옷들이 잘 맞았다. 내가 봐도 참 잘 어울리는 옷들이었다. 그런데, 그 옷들 때문에 우리 집은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사내대장부에게 계집애가 입던 옷을 왜 입게 하냐? 앞길 막으려고 그러냐?

  할머니께서 엄마를 막 나무라셨다. 왜 여자가 입던 옷을 남자가 입으면 앞길이 막힐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께서 할머니께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형은 끝내 이모의 옷을 입지 못했다.

  양성평등이라는 말은 아직도 우리 집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아빠께서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옛날과 다르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할머니께서는 꼼짝도 않으신다.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인데, 어떻게 하늘과 땅이 같으냐?

  “사내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돼. 그런 자잘한 일은 여자들이 해도 돼.

우리 할머니 말씀이시다. 양성평등이라는 말은 우리 할머니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말이다.

  오늘도 엄마는 혼자서 집안일을 하시느라 분주하다.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나 할머니 눈치만 살피고 있다.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엄마는 쓰레기를 버리러 가시는데 욕심을 내신다. 한 손에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박스, 빈 병과 깡통 등 앞이 안 보일 만큼 쓰레기를 안고 나가신다. ‘쿵, 우르르 쿵쿵’ 현관문 틈 사이로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빠와 난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엄마께서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복도 바닥에 나뒹굴어져 있었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에 앞을 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빠께서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셨고, 엄마는 허리를 다쳐 몇 주간 꼼짝없이 누워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으셨다. 엄마가 할머니를 모시기 힘들게 되자 할머니께서는 고모 집에 당분간 계시기로 했다.

  할머니께서 고모 집으로 가신지 며칠 후, 저녁에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딩동’

  “누구지? 지금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세요?

  “할머니다. 어서 문 열어라.

  “할머니, 왜 벌써 오세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는 대답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청소기를 가져다 아빠께 건네시며 집안 청소를 시키시는 게 아닌가? 나와 형에겐 걸레를 가져다 닦으라고 하시고선 할머니는 설거지를 하셨다. 갑자기 달라진 할머니의 태도에 멍하긴 했지만 어쨌든 엄마를 도와드릴 수 있어 내심 기뻤다.

  ‘할머니 말대로라면 지금쯤 고추가 떨어져도 열 번은 더 떨어져야 하는데……. 할머    니께서 왜 그러실까?

나의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와 엄마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얘야, 그 동안 네가 참 힘들었겠구나. 내가 며칠 딸네 집에 가 있으면서 마음이 참    속상했었단다. 내가 칠남매 중 여섯 째 딸로 태어나 서러움도 많았지만 남자만 중시    하는 집안에서 자라 남자가 집안 일 하는 게 몹쓸 짓이라 여겼단다. 막상 내 딸이     혼자 그 많은 집안일을 끙끙대며 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파 더 이상 거기 못 있겠더    라. 사위가 얄밉기도 하구. 시애미가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네가 마음 풀어라.

  ‘아하’ 이제야 내 궁금증이 속 시원히 풀렸다. 그 날 이후로 아빠께서 청소도 하시고 맛있는 요리도 해 주셨다. 물론 형과 나도 집안일을 한 몫 했다. 우리 가족의 이런 모습은 그 사건 이후로 생겨난 우리 집의 진풍경이다.

  요즘 할머니는 무척 바쁘시다. 집안 일 청소당번도 직접 정하시고, 월드컵 대표팀 감독처럼 이것저것 코치하시고, 감독도 하신다.

  “호준이는 네 방 청소를 맡아서 하고, 승재는 거실 청소를 하렴. 애비는 저녁 준비하    는 거 도와라.

  우리 가족 모두 한 가지씩 집안일을 맡은 후부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예전엔 엄마 혼자 집안일을 하느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이젠 함께 대화도 하고 과일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할머니 덕분에 잃어버렸던 엄마도 되찾았고, 더욱 화목한 가족이 된 것 같다.

  요즘 ‘양성평등’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참 어렵게만 생각되었는데,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바로 양성평등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양성평등의 실천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집에 있었는데, 난 ⌜파랑새⌟의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속담이 있다. 우리 가족처럼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노력한다면 가정에서 학교, 학교에서 사회, 더 나아가 우리나라도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양성평등 사회인 이상적인 나라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난 오늘도 형과 함께 쓰레기를 버리고, 계단을 하나 씩 하나 씩 올라간다. 현관문 앞에선 우리 집 대장 할머니께서 빨리 저녁 먹으러 오라고 빙그레 미소 지으며 손짓 하신다.

 

 

<장려상>

말로만 양성 평등 사회

 

영중초등학교

6학년1반 차석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가득합니다. 신문이나 TV뉴스 등을 살펴보면 하루에 수십, 수백, 수천 건의 사건․사고가 펼쳐집니다. 여기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더 가득하고 그것들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더 심각합니다. 남녀차별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양성평등’을 외치고 남녀차별을 없애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 모두 ‘양성평등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모르게, 우리 모두의 눈에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남녀차별은 없을까요? 우리는 말로만 ‘양성평등’을 떠들어대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을 자주 봅니다. 이 책의 일본편을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 일본의 목욕문화가 나옵니다. 일본에서는 기후의 영향으로 예전부터 목욕문화가 발달되어 있는데 가족이 목욕하는 순서가 언제나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가정 먼저 하시고 아버지, 아들 순으로 목욕을 한 후, 할머니, 어머니, 딸 순으로 목욕을 마친다고 합니다. , 가족 중 남성이 먼저 목욕을 한 후, 나중에서야 비소로 여성이 목욕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남성, 여성을 떠나서 가족 중에서 가장 웃어른이 먼저 식사를 하듯이 할아버지께서 먼저 목욕을 한다는 사실은 이해가 되었으나, 할머니보다 아버지, 아들이 먼저 목욕을 한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남녀차별이구나! 남녀차별은 없어져야해!

 그래서 저는 이 책의 내용을 학급친구와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반응은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넌 할머니보다 아버지, 아들이 먼저 목욕한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지?

 “응. 너는 이해가 되니?

 “그렇다면 넌 왜 가족 중에서 가장 웃어른이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니?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똑같은 웃어른이라고 생각하는데, 너의 그런 생각도 남녀차별 아닐까?

 “…”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남녀차별을 없애고 양성평등사회를 이루자고 말로만 떠들어 놓고는 정작 나 스스로는 어느 정도 남녀차별을 인정하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양성평등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우리 주변에 나와 같은 사람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오늘날은 남녀차별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을 하고 심지어 아직까지 남녀차별이 존재하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제는 남성과 여성 모두 남녀차별을 없애자고 한소리로 외칩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남녀차별의 뿌리가 깊게 박혀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점심식사를 1230분에 합니다. 보통 번호 순서대로 밥을 먹는데, 남자가 앞 번호에 있고 여자가 뒷 번호라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이 먼저 밥을 먹습니다. 남자는 앞 번호고 여자는 뒷 번호라는 것도 남녀차별의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이러한 작은 남녀차별은 실제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될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고 이루어지는 남녀차별입니다. 바로 저와 같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차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남녀차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왜 ‘여남차별’이 아니고 ‘남녀차별’이라고 할까요?

 선생님들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언제나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고 남녀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설명하십니다. 단지 남성과 여성을 다른 것뿐이라고,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더 세기 때문에 남자가 더 힘든 일을 하는 것이고 여자는 남자보다 힘이 없고 연약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좀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래서 항상 힘이 들고 어려운 일들은 모두 남자애들에게 시키십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남자가 항상 여자들 보다 힘이 셀까요?’ 그 답은 ‘아닙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만 살펴보아도 저보다 힘이 센 여자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여자 친구와 다툼이 있다고 하면 항상 여자 친구들보다 남자 친구들이 더 무거운 벌을 받게 됩니다.

 이제는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성을 떠나서 모두가 개인성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해결책이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결하지 않고 그냥 두면 더 깊게 땅속으로 뿌리를 박아 나중에는 그 뿌리의 끝을 찾을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남녀차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차별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남녀차별은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말로만 ‘양성평등사회’를 주장하지 말고 ‘양성평등사회’라는 말 자체가 없어지는 진정한 ‘양성평등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장려상>

내가 살고 싶은 평등한 세상

 

 신남초등학교

6학년 두레반 김현지

 

 ꡐ딸그락, 딸그락ꡑ 잠결에 희미하게 부엌에서 들려오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ꡒ현지야! 남현아! 일어나라!ꡓ는 아빠의 목소리에 ꡒ아빠! 엄마는?ꡓ 하고 잠을 깨었다. 평소에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부엌에서 아침식사 준비를 다하고 우리들을 깨우셨지만 엄마가 지방출장으로 새벽에 나가실 때는 혼자 아침을 챙겨 주시면서 우리를 깨우시는 아빠의 모습이 나와 내 동생에게는 익숙해져 있다.

  강의를 하시는 우리 엄마는 교육이 있을 때면 지방 출장을 자주 가시는데, 새벽 3시에도 가고 5시에도 가는 날이 많다. 그럴 때면 항상 아침은 아빠의 몫이 된다.

  뽀글뽀글 끓는 된장찌개와 생선 튀김, 계란말이는 우리 아빠의 정성이 가득 담긴 최고의 아침상이 된다.

  엄마하고 같이 활동하시는 선생님의 자녀들은 아침을 거의 거르고 학교에 등교한다는 엄마의 말씀에, 아빠가 우리에게 아침을 꼭 챙겨주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집과는 달리 아직도 다른 가정에서는 아침 식사 준비가 엄마들의 몫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런 아침풍경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집은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자랑 할 수 있다. 엄마가 퇴근을 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면 커다란 소파에서 신문을 읽고 텔레비젼을 시청하는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들의 공부를 봐 주시고 청소를 하시는 아빠의 모습에서 나와 내 동생은 행복을 느낀다. 같이 더불어서 할 일을 빨리 끝내고 저녁 시간을 가족을 위해 활용하자는 것이 우리 아빠의 생활 철학 이시다.

   그러나 이렇게 엄마 일을 집에서 잘 도와주시는 아빠도 할머니 댁에만 가면 할아버지들과 큰아버지처럼 근엄한 사람이 되고 텔레비젼만 보신다. 명절 때나 제사 때만 되면 엄마는 마음이 조급한지 빨리 가자고 하면서 우리들을 재촉한다. 할머니 댁에 가면 엄마는 부엌으로 아빠는 방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 할머니 댁에 가자마자 부엌에 들어간 엄마는 우리가 집에 올 때까지 부엌에서 서 계시다가 오신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방안에서 꿈적도 하지 않으면서 엄마가 제사상을 차리고 나면 제사는 남자들이 지낸다. 일만 하시는 엄마에게 나는 어느 날 ꡒ엄마는 왜 할머니 집에만 가면 부엌에서 일만 하는데..?ꡓ라고 퉁명스럽게 물어보았다. ꡒ그건......... 다같이 편안하자고 그렇게 하는 거지...ꡓ라고 말씀하시는 엄마를 보고 ꡒ학교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양성평등을 강조하고 있고, 아빠도 동생 남현이도 양성평등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할머니 집에 가서도 당당하게 요구할 건 요구해야지!ꡓ라고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화를 내었다.

  추석이나 설날 때도 아빠는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이 당연한 거고 엄마가 어쩌다가 외할머니 집에 가자면 생각해 본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생각할 때는 엄마를 낳아주신 분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이시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명절 때 외갓집에 가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하는데 아빠 생각에는 그것이 용납이 되지 않으신가보다. 그래서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가정도 명절 때만 되면 엄마와 아빠는 자주 다투시고 신경전을 벌이신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ꡐ그러면... .. 나와 내 동생은 나중에 결혼하면 엄마 같은 삶, 아빠 같은 삶을 살아야 하나?ꡑ의문이 든다. 부모는 아들이 꼭 모셔야 하고, 제사는 아들이 지내야 해서 할머니 댁에 가야 한다는 아빠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딸들도 아들이 할 수 있는 일 다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는다.

  남성과 여성은 태어날 때 물론 다른 신체구조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다르다는 것은 차이로 좋게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서, 남자라서 여자라서 할 수 있는 일을 차별하는 세상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차이는 기분 좋지만, 차별은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이라 해서 남자를 무시하고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모자라는 부분은 여성이 채워주고 여성이 모자라는 부분은 남성이 채워주면서, 함께 더불어 협력자가 되는 것이 양성평등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고 실천하면 명절날 남자는 방안에서 여자는 부엌에서 일만 하는 남녀차별 스트레스 명절날이 아니라 즐겁고 신나는 명절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남자는 어때야 하고 여자는 어때야 한다는 성 고정관념을 버리고 남자들도 집안일을 돕고 여자들도 함께 절을 하고 평등하게 일을 나누어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모두에게 즐거운 명절이 되기 위해서는, 설날에는 할머니 댁에 추석 때는 외할머니 댁에 가는 방법도 제안해 볼 만 하다.

  내가 바라는 평등한 세상, 바로 남자의 무게를 덜어주고 여자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존중하는 바로 그런 세상인 것이다. 축구선수, 경찰, 의사도 여자가 충분히 할 수 있고, 요리사, 간호사 등도 역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그런 것들에 선을 그어놓고 강요하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들이 있기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양성평등! 모두가 우월해지고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세상!!

  바로 남자와 여자가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다. 그 밑거름, 이제는 뿌려주어야 한다. 뿌려주지 않는다면 형편없이 우리는 시들고 만다. 우리에게 그 소중한 밑거름을 뿌려주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서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소중한 땀방울을 흘려야 한다.

 

  ꡐ남자와 여자가 함께 걸어가는 세상! 바로 지금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나라 화폐에도 신사임당이나 류관순 언니 같은 여성위인의 그림이나 아니면 남녀가 나란히 웃고 있는 화폐가 등장할 날을 기대하며…….

 

 

 

<장려상>

해정이의 행복 찾기

 

동이초등학교  

6학년 1반 박해정

 

  아침 등교 길이 어쩐지 신나지 않다.

  여느 때 같았음 친구들과 까르르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학교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우리 부모님은 농사일을 하신다.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시는 날이 많아 등교준비는 언제나 나 스스로 해야 하고, 중학교 다니는 오빠와 동생의 아침까지 챙겨야 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어머니께서 집에 들르지 않으셨다면 나와 동생은 지각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젯밤 지순이에게 빌려 온 책을 읽느라 너무 늦게 잠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지금 시각이 몇 신데 이렇게 자고 있어! 다 큰 계집애가 일찍 일어나서 아침 밥상 차릴 생각은 않고서. 오빠와 동생을 굶길 작정이야!

  잔뜩 화가 나서 쏟아놓는 어머니의 꾸중에 달콤하던 잠이 후다닥 달아났다.

  물론 내가 늦잠을 잔 것은 잘못한 일이지만 오늘따라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 서운해서 자꾸만 눈물이 핑 돈다.

  ‘왜 매일 나만…….

  나는 6학년, 남동생은 5학년, 그리고 오빠는 중학교 2학년이다.

  딸이 나 하나이다보니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을 때 집안일은 모두 내 차지가 되고 만다.

  조금 억울하긴 해도 당연하다 여겼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다.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그 다음날 늦잠을 자도 오빠에겐 한마디 야단도 안치시면서, 난 책 읽느라 그런 건데……. 오빠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아무것도 안하는데 왜 나만 매일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해!

  나는 학교에서도 내내 우울했다.

  ‘왜 하필 여자로 태어났을까.

 

  그 날 저녁,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숙제를 모두 끝내고도 방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저녁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리고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와 부모님께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해정아, 너 뭐하니? 얼른 밥상 차리지 않고?

  “나 밥 안 먹을 거예요!

  “아니, 쟤가…….

  한참을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자니 아버지께서 들어와 걱정스럽게 물으신다.

  “해정아, 어디 아프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아프지도 않고 아무 일도 없어요.

  “그럼 우리 해정이가 왜 이럴까?

  아버지의 자상한 음성에 순간, 참았던 억울함이 눈물로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나만 매일…….엉엉”

  아버지께서는 밑도 끝도 없는 내 눈물에 당황해 하셨고, 어머니와 오빠도 울음소리에 놀라 달려왔다.

  “왜 나만 매일? 그게 무슨 말이니? 울지 말고 차근차근 얘기해 보렴.

  “오빠랑 은철이는 청소나 설거지를 안 해도 되고 매일 나만 하잖아요. 오늘 아침에도 책 읽느라 늦게 잠들어서 일어나질 못한 건데 나만 야단치시고. 오빠가 아침밥을 차려 먹으면 안 되는 거예요? 저도 힘들단 말이예요.

  “해정아! 그건 네가 여자니깐.

  기가 막힌다는 듯 내 말을 가로막는 어머니께 아버지께서 눈짓을 보내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성차별을 하시는 거예요!

  나는 일부러 “성차별”이란 단어에 힘을 잔뜩 주어서 말했다.

  가족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머니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셨고, 오빠는 피식 웃음을 흘렸으며 아버지께선 빙그레한 웃음을 띠고 계셨다.

  먼저 입을 여신 건 아버지셨다.

  “우리 해정이가 그 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 그럼 우리도 가족회의를 열어서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눠서 하는 건 어떨까?

  이렇게 해서 우리 집 한쪽 벽에는 “차별하지 맙시다.”라는 제목의 역할분담표가 붙게 되었다.

  자기 방 청소는 각자가, 쓰레기 분리는 일주일씩 돌아가며 맡고, 식사는 어머니께서 준비하시되 오빠와 나, 동생이 돌아가며 차리고 치우기 등으로 말이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다.

  농사일로 바쁘신 부모님을 도와 사소한 집안일쯤은 우리 남매들 손으로 해결하려 노력하였다.

  그 동안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자인 나보다 남자인 오빠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반대로 남자인 오빠보다 여자인 내가 더 잘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아주 작은 예로, 세탁기에서 꺼낸 옷을 말릴 때 나는 작은 보푸라기 하나도 털어내고 구겨진 옷들을 반듯하게 펴서 널지만, 오빠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오빠가 쓰레기 분리를 해야 할 때 아버지를 도와 농기구를 옮겨야 해서 내가 오빠 몫의 일을 대신 하기도 하였다.

  나의 투정으로 아버지께서 제안하신 일이긴 하지만 가족 모두가 평등하게 집안일을 동참해 하지 않았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사실이다.

  그 후, 언제부터인가 우리 남매들 사이에서는 이것은 남자의 일이고, 저것은 여자의 일이니깐 두 손 놓자는 식의 생각은 사라진 듯 했다.

  무슨 일이든지 좀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섰고, 함께 했으며 누군가가 바쁠 땐 서로를 배려했다.

  그래서 나는 “차별하지 맙시다.”라는 역할분담표의 제목을 “서로 도와 행복한 우리 집”이라고 고쳐 썼다.

  이제는 왜 “남자”와 “여자”가 세상에 함께이어야 하는지를 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여자인 것이 행복하다.  ()

   

 

<장려상>

부족한 우리들

 

효령초등학교

6학년 1반 이현아

 

 지난 일요일은 우리 외할머니의 생신날이었다. 엄마, 아빠, 나와 동생 윤아 등 우리 가족 네 명은 할머니께 드릴 선물로 케이크를 준비하였다. 발걸음도 가볍게 외갓집에 들어서니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오빠들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이윽고 식사시간이 되었다. 한참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데 외삼촌이 오빠더러

 “주상아, 너는 우리집의 대를 이을 남자이니까 밥을 한 그릇 더 먹어라.

 하시며 밥 한 그릇을 오빠 앞에 더 갖다 놓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남자라고 밥을 더 많이 먹어도 되고 여자라고 밥을 더 먹으면 안되고.

 지금까지 맛있게 먹던 밥맛이 떨어졌다. 즐겁던 기분도 금방 가라앉았다.

 왜 외삼촌은 이런 말로 생신분위기를 망치시는지 모르겠다.

 잠시 지난 번에 엄마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현아야, 우리 집은 딸만 둘이라서 좀 걱정이다.

“엄마, 요즈음은 딸이 훨씬 좋다는 걸 몰라요?

“지금이야 좋지만 나중에 엄마 아빠가 늙으시면 누가 모시겠니? 외갓집에는 오빠가 둘   이나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내가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공부 시간에 선생님께서 그러시던데 요즈음은 사회가 바뀌어서 딸도 얼마든지 부모를 모실 수 있대요. 그러니 엄마 절대로 걱정 하지 마세요.

 “현아야, 고맙다. 비록 딸이지만 네 말을 들으니 아들이 없어도 마음 든든하구나.

 하시며 엄마가 나의 손을 꼭 잡으셨다.

 그 때 나는 마음 속으로 비록 여자지만 엄마를 실망시키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외삼촌께서

 “우리 현아가 오늘 노래 한 곡 준비했다고 하던데 우리 한 번 들어 볼까?

 하시며 분위기를 맞추어 주셨다. 나는 ‘어머님 은혜’를 2절까지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 박수를 치면서 잘 한다고 칭찬하셨다. 마음이 다시 즐거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약주를 조금 잡수셔서 시내버스를 탔다. 군위 장날이라서 차 안은 좀 복잡하였다. 술 취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셨다. 기사 아저씨가 조용히 앉아 계시라고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또 다른 아저씨가 일어나서 할아버지가 차 안에서 왔다 갔다 하시면 위험하다고 앉히시려고 했지만 할아버지께서 힘이 얼마나 세신지 아저씨가 도로 넘어질 뻔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다치시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 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나시더니 할아버지께 공손하게 인사를 하시면서

 “산호 어른 아잉교? 오늘 기분이 좋아 약주 한 잔 하셨구만요. 조금 있으면 내릴낀데   그만하고 자리에 앉으소.

 하시며 할아버지 손목을 잡고 자리에 앉히셨다. 차 안의 모든 손님들이 할머니의 행동을 보면서 갑자기 조용해졌다. 할아버지는 좀 무안하신 듯 어린아이처럼 할머니의 말씀대로 의자 끝에 얌전히 앉으셨다. 나는 할머니가 무척 지혜롭게 일을 해결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취하신 할아버지의 마음을 배려하여 공손하게 인사를 하시는 점이 좋았다. 차 안에서 모든 손님들이 할머니께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같았다. 기사님도 기분이 좋으셨다. 엄마 말씀으로는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바로 옆 집에 각각 혼자 사시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신다고 하셨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배려해 주고, 힘을 합치고,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날 아침 청소 시간에 남자들이 청소하는 강당으로 가서 나도 같이 거들면 안되겠냐고 물어 보았다. 병욱이가 헤헤 웃으며

 “강당 청소 걱정하지 말고 여자들 현관 청소나 잘하셔이"

 하면서 손가락으로 놀렸다. 나는 장난이 아니라 청소를 좀 더 잘해 보려고 그런 말을 했는데 좀 섭섭하였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우리반 남학생들도 강당 청소하는데 여자가 있으면 더 잘 된다는 것을 알 날이 오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남학생들은 힘은 세지만 섬세하지 못하고 뒷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밀대도 제멋대로 던져놓고 전깃불도 흔히 잘 끄지 않고 나오다가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날이 많았다 앞으로 우리 여자들이 청소를 거들며 밀대도 차곡차곡 챙겨주고 전깃불도 끄고 우리가 청소 뒷정리를 하면 강당은 더욱 반짝반짝 빛이 나겠지.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청소를 남 여로 가르지 말고  남 여 같이 섞어서 하면 시간도 적게 걸리고 청소도    더 잘 되지 않겠어요?

 라고 하였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은 남자거나 여자거나 혼자서는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이 많죠. 우리도    현아처럼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 주면서 둘이 아닌 동그란 하나가 되면 좋겠죠?

 하시며 웃으셨다. 앞으로 성별에 따른 구분보다는 능력에 따라 일을 분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부족한 점은 서로 보완하여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이 되기를 기대하며 나부터 노력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장려상>

남녀간의 존중으로 열어가는 양성평등 문화

 

부평서중학교

3학년 1반 조성해

 

남녀차별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있었던 것이고, 물론 현재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그 형식이나 유형, 정도가 달랐던 것이다. 남녀차별의 기원은 신체적으로 남자가 강함으로 경제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 잡은 남녀차별도 사회적․역사적 사건에 따라 수시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이러한 남녀차별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우리나라에서의 남녀차별은 조선시대 때에 남존여비, 남아선호사상, 유교적 사상으로 인해 특히 심하였다. 그 예로는 혼인하는 데에 첩을 둘 수 있었던 남자와는 달리 여자에게는 재혼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사례와 여자는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지 못했던 사례, 여자는 바깥일을 하지 못한 것이나 재산권에서의 불평등,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사례가 있다. 그 무엇보다도 당시의 사회적으로 남녀차별이나 그와 관련된 사상들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판단하여 남녀차별이 극심했음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거나 해결하기 힘든 사회적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어떤가? 과거에 비해 많은 인식들이 남녀차별보다 양성평등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선 양성평등에 대한 법률과 제도가 있으며, 또 이를 만들고 시행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법률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법률 제6401호’

『이 법은 헌법의 남녀평등이념에 따라 고용, 교육, 재화, 시설, 용역 등의 제공 및 이용, 법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이로 인한 피해자의 권익을 구제함으로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평등을 실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를 예로 들 수 있고, 제도적으로는 과거와 달리 여성들에게도 교육권, 참정권을 비롯한 여러 권리가 주어진 것, 직업적인 면에서 양성의 기회 균등이 점점 실현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듯이,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 또한 변하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로 ‘남자답게’, ‘남자다워야 해’ 또는 ‘여자답게’, ‘여자다워야 해’ 등의 작은 성차별적인 발언에서부터 남녀차별의 커다란 사상까지 지적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보아, 현대 사회의 ‘남녀의 관계’에 대한 생각과 경우들은 과거에 이루어졌던 남녀차별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회적 부분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특별한 이유 없이 남성을 유리하게 대하는 경우, 교육 기회나 방법을 성별에 따라 제한하는 경우, 병역의 의무를 남성이 많이 지는 경우가 전형적으로 양성평등이 실현되지 못한 경우의 예로 들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듯이,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음에도 사람들 머릿속에 양성평등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들이 많으며, 많은 사람들과 집단에서 양성평등과 관련된 문제에 고쳐야 할 점이 많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양성평등의 노력이 오랜 역사 속에서, 깊은 무의식중에 자리 잡은 생각을 지워버리기에 부족한 것일까? 민주적으로도,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도 자리 잡았으나, 최근 사회문제로 야기된 남녀차별을 뿌리째 뽑아버릴 방법은 있는 걸까?

성차별적인 사회적 문제를 놓고도, 남녀간의 대표적인 의견은 서로 다르며, 서로 자신이 속한 성별의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예로…….

 

▶ 대표적인 사례들

 

- 여성부에 대해

여성의 입장 : 남성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으며, 권리가 약한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부서를 창설한 것은 잘 한 일이며, 필요한 것이다.

남성의 입장 :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행정부서만 존재하는 것은 성차별이다.

 

- 취업․직장생활에 대해

여성의 입장 : 여성은 취직, 승진에 있어 남성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으며, 직장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남성보다 불편한 점이 많다.

남성의 입장 : 남성은 군대를 가야하기 때문에 여성보다 직장생활이 늦어 오히려 남성이 더 불리하며, 부담이 크다.

 

위의 사례와 같이 서로 자신의 성과 관련된 권익을 위해 주장하니 때로는 한 문제에 대해 남녀의 성별 중 어느 성별의 권익이 다른 성별의 권익보다 높아서 성차별적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는 다른 성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성에 대한 권익만을 추구하는 주장으로 일으키는 또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성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남녀 상호간의 존중’은 성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이지 않다 할 수 없다. 사회적인 성차별 문제가 남녀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부족하여 일어나는 것이라면, 상호간의 존중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존중함으로서, 자신이 속한 성의 권익만을 위한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성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이해함으로서 양성평등의 문화를 발전시키며, 서로가 존중하는 가운데에 양보와 타협을 통하여 남녀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양성평등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양성평등의 발전을 위한 남녀 서로의 이해관계 성립과 상호간의 존중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 것인가? 가정, 학교 등 교육적인 차원에서 이를 실천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성평등 문화를 조성할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일단 양성평등 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발걸음으로, 남녀가 서로를 접하며 사회생활을 할 기회와 그 경험이 중요하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학생으로서 이성을 접할 수 있는 남녀 공학 학교보다 남자 중․고등학교와 여자 중․고등학교의 수가 많은 것으로, 이성을 접해 볼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남녀평등의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학교에서는 남녀 공학을 비롯한 여러 제도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이성을 접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와 같은 공동체생활에서 일을 해나가거나 문제가 생겼거나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남녀에게 같은 기회, 같은 역할, 남녀에 구애받지 않는 정당한 권리 행사를 보장해 줌으로서, 또한 직접적으로 양성평등을 경험함으로서 남녀가 서로를 가볍게 보지 않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가 하는 일’, ‘여자가 하는 일’ 과 같은 편견의 발언과 실제로 사회에서 나타날 성차별을 예방하기 위해서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직업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이로서 성별에 따라 기피하거나 할 수 없었던 직업에 대한 정보 습득과 체험을 할 수 있고 많은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면, 양성평등 문화 발전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직업에만 한하는 것이 아닌,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성별 때문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적용시킬 수 있다.

가정에서 양성평등의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국가의 기본은 가정’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정에서의 문제 인식과 해결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많이 알고 있는 예로는 ‘집안일은 여자가 도맡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남녀차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실천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의견 존중도 중요한 것으로, 그 예를 한 가지 들자면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견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반영되는 것으로 들 수 있다.

어떤 일에서도 그러하듯, 양성평등의 문화를 조성함에 있어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함을 마지막에 밝혀 둔다. 양성평등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내가 속한 성별의 권익이 다소 떨어져 가슴이 아프더라도, 양성평등의 발전으로서 더욱 발전될 미래 우리 국민의 의식과, 더욱 발전된 우리나라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장려상>

‘트로피 남편’, ‘트로피 아내’

 

서강 중학교

3학년 4반 김승규

 

  트로피는 운동 경기에 나가서 우승했을 때 받는 우승배를 말한다. 트로피라는 말을 듣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김미현 선수가 4년의 긴 슬럼프에서 벗어나 미국LPGA 투어 진 클럽스 앤 리조트 오픈(총상금 250만달러)에서 우승컵을 품에 안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트로피 남편, 트로피 아내라니? 어린이날 아침 부모님과 동생과 TV를 함께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TV에서는 <아내의 성공이 나의 성공, 외조남 3인방>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한나라당 이혜은 국회의원의 남편이야기였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그분은 세 아들을 바쁜 국회의원인 아내 대신 돌보면서 요리는 물론 청소, 집안일을 모두 맡아서 하면서 사춘기인 중학생 아들부터 초등학생인 막내아들의 공부까지 책임지는 아빠였다.

 “우리 아빠 요리는 예술이에요.

 “우리 아빠 전화의 마지막 멘트가 무엇인지 아세요? 아빠가 하라는 곳까지 꼭 끝내 놓으라는 거예요.

 “맞아요, 우리 아빠 전화하시면 마지막 말씀은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아빠의 말씀 흉내까지 내면서 말하는 큰아들과 막내아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저건 우리 엄마의 전화 마지막 멘트와 똑 같잖아.

 자신도 대학 교수이면 학생들 가르치고, 연구하고 논문도 써야하고 힘들 텐데 바쁜 국회의원인 아내를 대신해서 모든 집안일과 아이들 기르기까지 책임을 지시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남자 체면에 너무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사람들은 내조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외조에만 관심을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산 지 이틀이 지난 바케트 빵은 딱딱해서 바로 먹을 수 없지만, 썰어서 밥솥 안에 접시에 넣어 두면 학교 다녀온 큰아들이 간식으로 말랑말랑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하시며 능숙하게 빵을 써시며 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양성 평등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는 트로피 아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처럼 아내는 트로피처럼 집안에서 주어진 일을 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단어 트로피 남편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트로피 남편? 그러고 보니 언젠가 어느 책에서 본 ‘미국의 성공한 여성 CEO들은 대부분 트로피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끝내 부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 엄마, 별로 의미가 없는 듯 말없이 보고 계시는 아빠, 그리고 아들이라고 엄마께서 모든 일을 해 주기만 바라온 나와 동생은 각자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직장일 하시면서 모든 집안일을 거의 다 해 나가신다. 물론 아빠가 가끔 도와는 주시지만 말이다.

  오늘날의 사회가 남자의 역할과 여자 역할을 구별하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 따로 현실 따로 인 것도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성 평등’, 알고는 있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는 쉽지가 않다. 바로 외조와 내조의 문제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서로의 능력과 이상에 맞게 활동하고 그 능력과 이상의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할 때, 양성 평등이라는 단어 자체가 필요하지 않는 세상, 그런 단어가 있었어? 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로피 남편, 트로피 아내는 이제 주어진 역할이 아니고, 각자의 가정과 생활과 시대에 맞게 선택하는 새로운 단어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 시대야말로 21세기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양성평등의 시대일 테니까.

 

<장려상>

평등한 조화, 아름다운 하나

 

대전송강중학교

2학년 7반 명순주

 

  일년에 몇 번 찾아오는 제사나 차례 때가 되면 어머니와 나는 음식 준비로 정신이 없다. 자라 오면서 늘 겪어왔던 거라 나는 그것이 여자로서 당연한 일거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남자들은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술자리를 갖는 것도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제사가 시작되면 그 많은 준비를 하고도, 어머니와 나는 제사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소한 생활문화조차도 무언가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가부장제, 남아 선호 사상 등과 같이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예술 모든 면에서 그 중심의 무게가 남성들에게 치우쳐 있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성들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가 낮았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 여성이 고작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내 짧은 지식 탓도 있겠지만, 필시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가 낮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것은 여성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능력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모양처(賢母) 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칠거지악(七去之惡) 을 최고의 악덕으로 치부했던 것만 보아도, 사회는 일률적으로 고정적인 여성의 역할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21세기를 앞둔 지금, 사회가 많이 변화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의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번씩 패야 한다 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라며 일방적으로 남자에 따라 여자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사고 방식이 조금이라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과감히 질문을 하나 던져 보고 싶다. ‘과연 남자와 여자는 다른가?’ 라고. 이에 대해 신체적인 차이를 차별로 둔갑시키며 ‘다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또한 극단적으로 되묻고 싶다.  당신들은 당신의 어머니를 여성이라 더 사랑하고, 아버지를 남성이기 때문에 더 사랑하는가?  혹은  당신은 꽃의 수술과 암술을 분리하여 물주고 거름을 주고 정성을 주는가? 라고. 굳이 이런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즉 우리는 남성, 여성 두 종류의 인간이기 이전에 똑같은 권리를 갖고 똑같이 자유를 꿈꾸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남성이기 때문에, 또는 여성이기 때문에 일정한 성적 역할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여성은 연약하기 때문에 보호해줘야 할 존재이며, 다정다감하고 예민하며, 소극적, 의존적, 방어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남성은 강인하기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들을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이며,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적극적, 독립적, 능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옷 하나를 입어도 남자는 분홍색보다 파랑색을 선택해야 하고,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적 고정관념이다. 흔히 사회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고부가가치 창출의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성적 고정관념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성적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영화  왕의 남자 가 관객수 1200만명을 넘어 흥행에 성공하였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왕의 남자 에 열광하였던 이유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공길이라는 남성 캐릭터 속에 있는 여성성의 발견이었다. 이런 사실은 어떻게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 내 이분법적인 성적 경계가 견고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은 남성도 충분히 여성성을 지닐 수 있으며, 여성도 충분히 남성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엿보게 된 것이다. 또한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선출되었는데, 이것은 남성만이 제격인 것처럼 여겨져 왔던 정치 영역만의 공식도 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여성들만의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간호사나 미용사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남성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반대로 남성들만의 직업이었던 자동차 정비사나 군인 등의 직업에도 여성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양성 평등을 위한 출발일 뿐이다. 여전히 사회 속에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차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진정한 양성 평등을 위한 사고 전환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곧 진정한 양성 평등의 출발점인 동시에 해결의 과제이다. 우리는 과감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하고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그 단순함만이 양성 평등을 위한 기본적 출발점이다.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는  양성적 인간 이라는 말은 결국 이와 다르지 않다. 남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기대의 틀과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기대의 틀, 그 틀을 허물고 누구든 자유 선택과 의지에 따라 살아간다고 사고할 때, 양성적 인간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눈물을 잘 흘리는 남자가 있다면, ‘사내가 자존심도 없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참 감정이 세심하고 풍부하구나’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자가 있다면 ‘저 여자, 팔자가 참 세겠구나’라는 생각을 버리고, ‘참 리더쉽이 강한 사회적 성격을 지녔구나’라고 생각하자.

   최근에 호주제가 폐지되고, 학교에서도 여학생의 생리 결석이 인정되고, 사회에서도 여성의 출산 휴가가 보장되는 많은 사회 제도와 법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법적 장치가 준비된다고 해도, 오랫동안 사회 속에서 군림해 온 성적 고정관념이 허물어지지 않는 이상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듯이, 여성은 남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남성 또한 여성이 없으면 존재 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존재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인간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남성이기 때문에 또는 여성이기 때문에 주어진 많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여야 한다. 아울러 모두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평등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양성평등의 길을 실천하여야 한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간의 평등한 조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려상>

남자만 지망 가능

 

                               동신중학교

                                 1학년 5반 김진희

 

  “와~ 이건 완전 성차별이다. 뭐 이런 게 다 있냐!

중학교에 들어와서 얼마 안 된 지난 달, 황당해서 흥분한 적이 있었다. 우리 학교는 방과 후 학교 시범학교라 날마다 7교시 수업을 한다. 7교시에는 자기가 원하는 특별활동 반에 들어가 수업을 받는데 중학교에 처음 들어와 내가 원하는 수업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잔뜩 기대를 갖고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안내장은 위쪽과 아래쪽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위쪽은 교과에 대한 특별활동이었고, 아래쪽은 취미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1지망, 4지망, 6지망은 교과활동을 쓰시고, 나머지 지망은 취미활동 중 골라서 쓰세요.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안내장의 뒤쪽에 씌어져 있는 안내문을 보았다. 교과관련 부서로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이 있고, 압화공예, 종이공예, 퀼트, 헬스, 탁구…… 등등 다양한 특기적성이 개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축구나 농구 배구 등과 같은 반도 있었다.

 ‘바로 이거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지망하려는 순간, 그 다음에 이어진 선생님의 말씀에 내 손에 끼워져 있던 샤프를 교실 바닥으로 쨍 하고 떨어뜨렸다.

 “아참, 여자들은 축구나 농구, 배구반 안 돼요. 다른 것 선택하세요. 거기 옆에 보이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자세하게 쳐다보니 조그마한 글씨로 ‘남자만 지망가능’ 이라고 씌어 있었다.

 ‘치~ 이게 뭐야. 여자는 운동도 못한다는 거야?’ 종이공예나 퀼트는 ‘여자만 지망’이라는 말이 없는데 왜 그럴까? 나는 몹시 서운하였다.

  나는 축구를 비롯하여 모든 운동을 좋아하고 나름대로 잘해서 초등학교 때도 축구부 활동을 했었다. 시합에도 나가 봤고 육상 부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못 하는 것 없이 운동을 좋아했었는데 중학교에 와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지망조차 못한다는 사실이 좀 짜증났다. 그래서 이런 짜증스러움을 조금이라도 체육선생님께 알려 드리려고 체육시간에 배우는 축구를 더 열심히 배우고 있다.

  지금은 옛날하고 달라서 여자들의 권리가 더 많다느니, 남자들이 여자들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느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다. 학교뿐만 아니라 그냥 일상 생활에서도 아리송하게 기분이 묘한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계집 녀()’ 라는 한자인데 나는 한자수업을 받을 때나 학습지를 할 때, 나오는 이 글자에 기분이 조금 나쁘다. 남자를 나타내는 한자는 ‘사내 남()’이라고 좋게 표현하는데 여자를 나타내는 한자는 욕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낮추는 말 같기도 하니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 집은 유난히 남녀차별이 강한 집이다. 지금도 공주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동네는 우리 선산 김씨 양반들이 사는 동네이고, 저 동네는 상놈들이 사는 동네다. 전에는 저 동네사람들과는 말도 못하게 했다.

그러시면서 왕릉을 방불케하는 선조들의 산소를 둘러보며 흐뭇해하신다. 그리고는 으레 우리 집 장손, 장손하며 우리 오빠를 위해 주신다. 나는 그럴 때마다 정말 섭섭하기도 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억울했던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옛날 분이니까 그렇다해도 젊은 아빠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우리 아빠는 법학박사이시다. 배울 만큼 배운 분이 얼마 전에는 TV에서 ‘제니 주노’라는 영화를 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에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제니 주노’는 고등학생들이 사귀다가 임신을 하는 내용이었다.

 “야, 김진희! 넌 저렇게 하면 당장 쫓아낸다. 알았니?

  나는 웃으면서 말씀드렸다.

 “저는 절대로 저렇게는 안 해요.

  그 때 옆에서 묵묵히 듣고 계시던 엄마께서 아빠를 놀리듯 여쭤보셨다.

 “그럼 진형이가 저러면 어떻게 하죠?

  아빠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거기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어떡하긴?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기 봐주고 며느리로 삼아야지.

 “아니 이럴 수가!

 나는 아빠 말씀에 항변을 해 보았지만 말이 안 통했다.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는 말씀이셨다.

 나는 도대체 남자와 여자가 왜 다른지, 왜 달라야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갔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오빠보다는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무엇이든 열심히 생활했다. 그래서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남자에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본적도 있다.

  우리는 집안에서, 학교에서,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여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세상의 반은 여자이고, 집안의 모든 큰 일· 작은 일에 여자가 없어서는 안 된다.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다. 여자·남자이기에 앞서 우리는 사람을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에 따라서는 남자도 여자 같아야 하고, 여자도 남자다워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여자·남자가 아닌 우리, 세상을 같이 떠받들고 가야하는 동반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어느 한 쪽을 차별한다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아주 큰 불이익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남자·여자 어느 한 쪽만으로는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번 신청 때에는 7교시 특별활동 시간에 여자들도 운동부에 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나는 세상의 중심을 구성하는 절반 속에 있는 하나이고 나로 인해 시작되는 우주의 출발선에 있다. 진정한 양성평등은 우리 모두가 소중한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세상일 것이다.

 

 

 

<장려상>

남자는 하늘, 여자도 하늘

 

                                                                부천부흥중학교

                                               3학년 4반 명세라

 

몇 년 전부터인가 설날은 내게 별 달갑지 않은 명절이 되어 버렸다. 친척들과 모여 떡국을 먹으며 즐거워해야 할 명절이 싫어지기 시작한 것은 몇 해 전 설날 아침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아침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아침,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일 년이 알차다는 큰아버지의 근엄한 목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서 번쩍 눈을 떴다. 아침부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전날에 미리 큰어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함께 도와 만든 음식을 제기에 올리느라 몹시 부산했다. 그 전 설날까지는 마냥 큰댁에 와서 놀기에 바빴는데, 이번 명절부터는 음식 준비부터 제사상 차리는 것까지 큰어머니를 도왔기 때문에 느낌이 새로웠다.

우선 마음을 정갈히 하고, 어른의 말씀에 따라 깨끗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드디어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 큰방에 모여 상을 차린 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먼저 큰아버지가 엄숙한 태도로 향을 피우시고 술을 따르시며 절을 할 준비를 하셨다. 고요하다 못해 사뭇 엄숙한 경건함이 나를 압도하는 듯 했다. 평소와는 다른 마음이었기 때문에 제사 드리는 순서 순서가 새로워 보였다. 학교에서 배웠던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와 아름다운 전통이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고 뿌듯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레고 긴장되기도 했다.

드디어 친척들이 절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기대에 벅찬 가슴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큰절을 올리려고 한 발짝 앞으로 옮기는 순간, 누군가가 내 옷을 확 잡아 당겨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리고 큰어머니 손에 이끌려 옆방으로 들어갔다. 일찌감치 자리를 옮겨 큰엄마와 엄마, 언니들이 가 계셨던 옆방이었다. 이유도 모르는 상태에서 끌려 왔다는 것이 속상해서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난 저기에 있으면 안되는 거에요? 나도 절하고 싶은데......

내가 묻자 엄마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실 뿐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를 모질게 끌고 들어오신 큰어머니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입을 여셨다.

“세라는 안돼.

그 이유가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다른 오빠들은 다 되는데, 내가 왜 안돼? 난 어제부터 음식 준비도 하고, 제기도 닦고, 상도 차리고 열심히 도왔는데, 아무것도 안한 오빠는 되고 열심히 준비한 나는 왜 안되는 거에요?

이미 나는 불만에 가득 찰대로 차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여자가 절하면 집안이 망한댄다. 그래서 여자는 절을 못하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돌에 맞은 듯했다. ‘뭐?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절을 못한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곰곰이 제사를 지내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제사는 후손으로서, 돌아가신 웃어른에 대한 예의이자 화목한 가족을 이루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고, 가족들 간에 정을 쌓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쁜 날을 위해 먼 곳도 마다하지 않고 여러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또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여자들은 제기를 닦는 것부터 음식 준비, 상 차리는 것까지 모든 준비를 도맡아 한다. 이런 준비 절차에서는 여자들의 몫이 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자리를 함께 되새기면서 조상들의 은혜에 감사하는 순간에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제사를 지낸 후 음식을 먹을 때에도 여자들은 남자가 다 먹은 후 남은 음식을 먹었다. 이 날 이후, 난 명절 때마다 늘 불만 반, 어리둥절함 반으로 설날 음식을 준비하곤 했었다. 하지만 준비하는 명절마다 내 마음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이 작은 일을 계기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던, ‘여성’이기에 받는 남성과 다른 대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은 예로 신문이나 플래카드에 보면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자꾸 띄인다. 여성 총리, 여성 후보자, 여성 국회의원, 여성 판사·변호사 등, ‘남성’이라는 붙지 않으면서 ‘여성’이라는 단어는 꼭 붙이는 몇 개의 단어들이 있다는 것이 새롭게 들어왔다.

또 수업시간에 배우는 내용에서도 상당히 호기심이 생겼다. 상대적으로 국어 책에는 여성 작가가 쓴 글이 적었고, 수업 중 배우는 유명한 사람이나 명언도 거의 남자들이 한 말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실제로 그런 말이나 글을 많이 쓰지 않아서였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납득이 가지 않아 선생님께 질문을 하게 되었다. 교과서나 책을 편찬하는 권위 있는 사람들 역시 남성들이 대부분이고,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쓴 글에 비해서 남성들이 쓴 글이 실릴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점점 균등해지고 있는 추세이며, 이런 틀이 많이 깨지고 있는 중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덧붙이신 선생님의 말씀은 나를 다시 한 번 새로운 생각들로 이끌었다.

“세라야, 세라는 혹시 한 가지 편견을 또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렴. 여성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란다. 선생님도 여성이기에 잘 생각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남성이기에 받는 차별도 역시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단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들이 남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차별로 존재하고 있지. 예로 간호사나 영양사 등의 직업을 가진 남성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는 않을까?

이 말이 한동안 귀에 맴돌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하게 되었다. ‘차별’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엄연히 남성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유교적 관념이 중요한 것으로 작용하여 왔다.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이유가 되는 ‘칠거지악’과 여자가 지켜야 할 도리인 ‘삼종지도’, 그리고 더불어 ‘열녀’ 개념까지, 여성들은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야했다. 하지만 유교뿐만 아니라 서구의 종교인 기독교의 성경에도 이러한 정신은 들어 있었다. ‘여자들은 잠잠하라, 오직 복종하라,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등의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위치에서 보지 않고 남성에게 복종하는 위치로만 여겨왔다.

물론 지금은 여성이 천대받던 시대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겉모습만 변했지, 그 안에 있는 정신이나 뿌리 깊은 사고방식은 아직도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문제는 ‘남여 평등’이라고 할 때, 여성이 받는 부당한 대우만 너무나 강조되어 상대적으로 남성들이 받는 부당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해질 수록 여성이 받는 차별 대우와 함께 남성이 가정과 가문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 역시 동시에 더해진다.

이러한 잘못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가 전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편견을 부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해야 할 직업이 정해져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누군가가 무슨 직업을 가졌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여성들은 혹시 남자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주고 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그리고 말은 늘 동등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여성들이 설 자리를 내주지 않는 남성들이 있지는 않는가, 더 나아가 작고 사소한 것에서는 선심 쓰듯 평등을 실천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일에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남성’을 내세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가. 결국 우리는 힘을 합하여 알게 모르게 남녀 불평등을 만들어 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가장 사소한 일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남녀 불평등을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이런 의식적인 문제를 고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회 전반에 걸쳐 성차별에 관심과 문제 의식을 갖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즉 기본적인 사고 관념이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볼 수 있도록 사회의 시각도 변해야 하며, 의식적으로라도 동등하다는 것을 자꾸 되새겨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의식 위에, 학교와 가정에서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나 학생 모두가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차별 없이 분담해야 한다. 또 배우는 내용이나 우리가 자주 보는 것들이 남성에게만 유리한 것들이 많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또 가정에서는 어른들부터 함께 조화를 이루며 의견을 일치하거나 가정 내의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조화’란 상대적으로 힘이 좀 더 센 남성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남자들이 하되,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미루지 않고 함께 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여러 친척과 어른, 아이가 함께 모이는 명절 같은 경우에는 되도록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한쪽 성에만 부담이나 책임감 등이 가중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더욱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학교와 가정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힘을 합하여 성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준다면 조금씩 해결할 수 있다고 행각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의 지속적인 지지와 더불어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가 함께 동등한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합쳐진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바야흐로 이제는 21세기이다. 우리가 이렇게 양성 평등에 관심 갖는 이유는 단지 사소한 싸움을 그만하자는 의도가 아닐 것이다. 학교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인격체로서 대우 받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교육받기 위함이고, 가정에서는 딸과 아들 모두 행복하게 살아 나가며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 작은 노력은 결국 우리 나라의 앞날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사소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세계의 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서구권을 보면 높은 경제와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는 많은 나라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위치에서 평가하고 대우하며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이다.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는 다른 성에 대한 배려가 존재하고 있었다. 서로 가진 편견을 과감히 버리고 남성과 여성이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고 나라를 이끌어 가는 두 축이 되어 대한민국 발전의 밑바탕이 된다면 빠른 시간 내에 대한 민국은 반드시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덧붙이며 글을 맺고자 한다. ‘차이는 인정하나 차별은 도전한다.’ 남녀 서로가 가진 ‘다름’을 이용하여 각자의 능력이 요구되는 일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대신 남녀의 행복을 막는 차별적인 대우에는 도전하고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차이와 차별을 바로 보는 미래가 될 때 행복하고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장려상>

나도 이제는 말하고 싶다!

 

연천 백학중학교

3학년 조윤재

 

 19년 전, 뼈 속까지 파고드는 추위가 어느 정도 시작 되었을 때, 내가 살고 있는 백학의 어느 마을에서 작은 여자아이가 태어났었다고 한다. 내심 남아이기를 바라셨던 아빠는 실망한 채 약 일주일간 마을회관에 주무셨다고 한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난 손자보다 손녀가 더 좋다.”라는 말씀 하시고 다음 날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 둘째 언니는 그 말을 듣고 나면 언제나 눈물을 보였다. 둘째 언니가 여자 아이로 태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이나마 잘못하면 아빠는 화를 내신다. 아빠가 화를 내는 이유는 “아들일 것 같은 애가 딸로 태어났다.”는 말도 안 되는 배신감이 들어서라고 하신다.

 우리 집은 14녀이다. 내 위에 언니가 3명이고 내 밑에 남동생이 있다. 내 이름이 남자 아이 같은 이름을 가진 이유는 “딸 이름을 남자 애처럼 지으면 아들을 낳는다.”였다. 난 여성이지만 이름이 남자 아이 같다며 어릴 적 친구들과 언니랑 싸울 때의 이유였다. 그래서 어릴 적 나는 엄마께 울면서 물었다. “엄마, 나는 여자인데 왜 남자애 이름이야? 차라리 날 남자로 태어나게 하든지 아님 이름을 예쁘게 지어주든지…….” 난 누군가에게 내 이름을 소개하라면 예전에 비해 조금은 당당해졌지만 아직까지는 창피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내가 남자애 같은 이름을 가져서 인지 몰라도 내 성격은 무척이나 활발하다. 그런 점에서는 내 이름이 좋다.

 얼마 전, ‘안녕하세요, 하느님!’이라는 드라마에서 생긴 것은 남자 같이 생겼는데 이름이 ‘유리’라 하여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남자 이름이 그게 뭐야. 차라리 자물통이 어울린다.”라고 대사를 하신 것이 생각이 난다. 남자들도 ‘유리’나 ‘성희’, ‘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고 여자들도 ‘강현’이나 ‘태형’, ‘순식’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조부모님 혹은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에는 어른들이 바라는 삶이되길 바라기 때문에 지어준 이름을 가지고 놀린다는 것은 아직도 고정관념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 우리 집에서는 언니들과 내가 아빠 일을 도와 드려야 했지만 보기에도 약해 보이는 남동생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뛰어다니기 바쁘다. 힘든 일은 언니들과 내가 하는데 남동생은 오히려 불만이 많다. 자신이 하기 싫은 닭 사료 주는 것을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불만은 엄마와 우리 자매가 많은 것이다. 청소도, 설거지도, 빨래도 모두 엄마나 언니들과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엄마가 식당 일을 하시기에 빨래 세탁하는 것은 아빠가 맡으셨지만 너는 것과 개는 것은 언니가 맡았다. 엄마랑 우리가 출근하고 등교해서 집에 없을 때, 아빠는 점심은 혼자서 드시지 않으려고 하시고, 엄마랑 우리가 치우지 못하고 일찍 나가 집안이 더러우면 치우실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손님을 초대하시는 아빠가 못마땅하다. 손님이 오시면 적어도 대충이나마 치워 깨끗이 보이면 좋으련만 아빠는 여자들이 할 일이라며 안 하신다. 아빠는 직접 퍼서 드실 수 있는 국이나 밥을 꼭 엄마나 우리 자매에게 시키시고, 자신이 직접 떠서 드실 수 있는 물을 꼭 떠오라고 시키신다. 자신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부려먹어도 된다.'는 아빠의 잘못된 생각은 버리고 하루빨리 웬만한 것들은 알아서 하시길 바랄 뿐이다.

 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첫째 큰어머니는 나를 몇 번씩 울리게 만드신 분이다. 아직도 유교적 사상과 남아선호사상을 가지신 분이셔서 내게 작은 상처를 안겨주시는 분이시다.

 작년 4월 쯤, 나는 큰집에서 공부를 하며 숙식을 했다. 학교 가기 위해 아침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작은 새언니께서 밥상을 차려주시려는 것을 큰어머니는 내가 듣는 곳에서 이렇게 말하셨다. “아버지랑 항설이가 밥을 안 먹었는데 지가 뭐라고 먼저 먹으려고 해! 지네 집 가서 먹으라고 하지. 지네 집에는 밥이 없어! 이제 일 나가야 할 사람들부터 챙기지 학교 가는 놈부터 챙겨? 그까지 학교 다니는 것이 뭐가 대수라고!

 남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기분 나빠했을 터이지만 같은 여자인 큰어머니의 이런 말을 들으니 서럽고 듣고만 있었던 내 자신과 그런 말씀 하시는 큰어머니가 너무나 미웠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난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차별 안 받고 잘 살고 있었을 텐데. 나를 이렇게 낳아준 엄마가 정말 밉다…….’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는…….

 첫째 큰어머니를 조선시대 사람으로 하면 아빠는 일제시대 사람이라고 아빠는 말하셨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첫째 큰어머니가 고려 시대 사람이고 아빠가 조선시대 사람인 것 같다.

 우리 자매는 아직까지 불만을 아빠와 엄마 몰래 뒤에서 토해내고 있다. 언니들이나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언제나 교복 빨고 다리는 것은 자신들이 담당했지만 올해 입학한 남동생의 교복은 세탁기나 엄마가 빨게 되었다. 조선시대로 비유한 아빠도 남동생에게 교복 빨라고 하지만 엄마는 끝내 자신이 빤다고 하신다. 그래서 내가 엄마께 “내 교복 빨아준 건 손에 꼽을 만큼 조금이면서 왜 쟤 교복은 만날 빨아줘? 자기 교복이니깐 자기가 빨아야지. 빨아 주지 마, 빨아주려면 언니 거랑 내 것도 빨아줘!” 그러면 엄마는 “넌 딸이고 쟤는 아들이잖아. 아들이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어. 나가면 자기가 알아서 하니깐 지금이라도 빨아줘야지.” 엄마는 가끔씩 동생 편을 많이 들어주신다. 남동생 옷만 빨아주는 엄마가 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자라며 안 빨려고 하는 동생이 언제나 미웠다.

 내 동생은 언제나 5살 많은 첫째 언니와 동생은 똑같은 금액의 돈을 받았다. 우리는 그 것이 불공평하다고 아빠께 말했지만 아빠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며 감싸신다. 그럴 때마다 난 아빠 몰래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둘째언니랑 셋째언니랑 나랑은 아빠 딸 아닌가봐. 만날 동생만 돈 많이 준다.”라고…….

 우리 집의 지존은 아빠라고 한다. 아빠가 지존이니 ‘내 말은 곧 법이다.’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어릴 적, 이 말을 들으면 이해가 안 됐다. ‘왜 아빠 말이 법이지? 엄마 말은 법이 될 수 없을까?’ 난 이 의문에 답을 찾았다. 우리 집의 호주와 가장은 아빠이고, 돈 벌어오는 사람 또한 아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 집의 호주와 가장이 엄마이고 돈 벌어오는 사람 또한 엄마이라면 엄마의 말이 법일까? 우리 아빠의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들은 여자다워야 한다고 한다. 과연 남자들의 남자다움이란 것은 무엇일까? 여자들의 여자다움이란 것은 무엇일까? 흔히 사람들은 남자다움은 밝고, 적극적이며, 눈물을 쉽게 흘리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고, 여자다움은 조용하고 얌전하며 다소곳해야하며 말이 적어야 하고, 애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지겨워 할 것이며 새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남자가 남자답지 않고 여자가 여자답지 않으면 어떠한가. 남자가 여자답고 여자가 남자답고 아님 여자답고 남자다운 사람이 있기에 이 세상은 언제나 새롭고 신비롭지 않은가.    

 자신이 높은 줄만하는 남자들. 여성이 없었더라면 남성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남성이 없었더라면 여성이 없었을 것이다. 굳이 이 세상에서 높은 사람이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양성은 평등한 것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보다는 ‘양성은 하늘이고 땅이다.’ 라는 말이 이 시대에서는 옳은 표현일 것이다.

 21세기를 흔히 ‘여성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지난 20세기까지가 남성 시대라 한다면 21세기는 ‘양성시대’이다. 남녀가 서로 공존하는 이 세상. 양성이 모두 법 앞에서 평등해지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힘을 쓰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장려상>

할머니, 할아버지, 저는 제사 모시면 안 되나요?

 

경남교육청 웅남중학교  

3학년 13반  20번 변지연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며칠 전, 오랜만에 찾아 온 꿀 같은 휴일에 양산 공원 묘지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을 뵈러 갔습니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 ‘우리 강아지 왔나’하고 저를 꼬옥 안아 주실 것만 같은 두 분에 대한 그리움이 새삼 밀려 왔습니다.

 그러나 두 분의 산소를 갈 때마다 또 다른 이유로 전 못 견디게 서러워집니다.

 ‘변OO

 차가운 비석 뒤에 손자 손녀의 이름을 새겨 넣는 난의 제일 위 칸에 태어난 적도 없는 아빠의 아들, 두 분의 장손자가 ‘변OO’라는 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 남동생을 꼭 낳아야 한다며 작은 할아버지들이 미리 이름 적을 칸을 만들어 두신 것이지요. 그 다음 칸에는 할아버지의 손자, 작은아버지의 아들인 변성철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어린 사촌 남동생 성철이의 이름을 지나서야 제 이름 석 자가 나타납니다. ‘변지연’, 두 분의 영원한 재롱둥이, 여섯 살짜리 꼬마 숙녀로 기억될 유일한 손녀 말입니다.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성묘라도 할라치면, 그 보기 싫은 동그라미 두 개와 사촌 동생 성철이의 이름이 약을 올립니다. 너는 왜 제일 먼저 태어나고도 제일 뒤에 있냐고, 제사도 못 지낼 거면서  왜 5대 장손의 첫째 딸, 외동딸로 태어났냐고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계시니까 저희 집일을 훤히 다 아실 거예요. 엄마, 아빠는 여성인 제가 차별 없이 남자들과 나란히 능력을 겨룰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그러기 위해 가정 일이나 아이 키우는 일이 덜어지기를 누구보다 바랍니다. 아빠는 딸 키우는 아빠로서 모범적으로 남녀평등을 실천하고 있어요.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엄마보다 집안일도  더 많이 하고, 저를 키우는 일에도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씁니다. 제사 때도 엄마 못지않게 바쁘죠. 제사 끝나고 손님들이 다 돌아가면 목욕탕에 엄마 반신욕 할 물 받아 놓고 청소며 뒷정리에 여념이 없을 정도랍니다. 결혼하기 전에도 할머니 일 많이 도왔다고 할머니께서도 자랑하셨잖아요?

 

  그런데, 이런 저희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제사 문제지요.

 할아버지,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 저는요,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모시고 싶습니다, , 제가요. 사촌 동생 성철이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요, 엄마, 아빠가 집에서 제사 지내시는 거 질리도록(죄송합니다) 보아서 제사 지내는 법도 잘 알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철이는 두 분이 돌아가신 후에 태어나 두 분에 대한 추억이 없잖아요. 근데, 저는 다 기억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저 갈 때마다 봉봉 주스 준비하셔서 마시라고 주신거랑요,  신문 읽으실 때 코에 걸치시던 돋보기 안경이랑요. 할머니께서 수놓으시던 모습도,  두 분과 부산대학 산책 나가던 거 저 그거 다 기억나요. 두 분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이렇게 행복한 중학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와 성철이 중  누가 더 애틋한 마음으로 두 분을 생각하며 제사를 지내겠어요?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는 제가 지내고 싶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작은할아버지들, 작은아버지, 고모 등 친척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이 됩니다. 눈을 개구리마냥 크게 뜨고 냅다 소리를 지르겠죠? , 어쩌면 상을 엎어 버릴지도 모르겠어요.

 “뭐야? 네가 정신이 나갔구나. 어찌 계집애가 감히 제사를 모시겠다고. 쯧쯧...

 그렇지만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아세요? 아들들만 제사 지내는 풍습이 원래의 우리 풍습이 아니라는 것을. 옛날  고구려에도 데릴사위 제도가 있었고요, 고려 때나 조선 시대 성리학이라는 유학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들 딸 구별 없이 유산도 똑같이 나누어 주고, 제사도 아들, 딸 돌아가며 지냈다는 것을요.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사실은 두 분의 영원한 재롱둥이 꼬마 숙녀 지연이의 제사를 받고 싶으시죠? 생전에는 제 남동생을 원하셨지만, 이제는 정성이 깃든 저의 제사를 받고 싶으시죠? 엄마, 아빠께서도 친척들이 동의해 주시면 제가 두 분 제사를 모시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대요. 그렇게 되도록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힘 좀 써 주세요, ?

 

 

                                                             20064

                                   두 분의 영원한 재롱둥이 맏손녀 지연 올림  

 

 

<장려상>

 ‘서로 소중한 존재’ 라는 인식 속에

도래하는 평등 사회

                                                 

                                      금정고등학교  

3학년 7반 김 태 욱

 

  나는 매일 학교 가는 버스를 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을 한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은 나는 차분히 오늘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급제동을 하면서 심하게 앞으로 쏠리며 멈추었다. 앞에 있는 차가 푸른 신호를 보고도 실수로 갑자기 멈추어 버린 것이다. 나와 승객들이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고 있을 무렵 아저씨는 그 차 옆으로 가 막 소리를 쳤다.

 “ 아니 이 아줌마야, 그렇게 갑자기 서면 어떡해?  큰 일 날 뻔했잖아!

 “ 여자가 집에 조용히 집안 살림이나 할 것이지 나와서까지 난리야!

 “ 아, 죄송해요. ” 아주머니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다. 그러자

 “ 미안합니다. 그런데 아저씨 정말 너무하시네요!

 “ 아니...이 아줌마가......

 “ 이 무슨 난리고 글쎄, 빨리 갑시다!(승객들)

 이렇게 어수선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등교를 하는데 ‘ 우리, 엄마도 운전하는데...’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떠나지 않아 제대로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물론, 아줌마가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아저씨의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아.’ 그 날 나는 몹시 멍한 느낌이 감돌았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갈등, 집단과 개인의  갈등이 생겨나는데, 여기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남녀간의 갈등이다.

  이 때까지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남아선호사상’이 전해져 와서 현대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정말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생활들이 거의 대부분 남자 중심으로 되어 왔다는 것이다. 아들을 낳기 위해 아기를 낳고 또 낳고 하다보니 대체적으로 막내가 남자이거나 마지막에 가까운 아이가 남자로 태어나는 경우의 예가 그렇다. 이를 봐도 남자를 선호한 사회적 풍토를 지적할 수 있다.

남녀의 차별,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에 의한 남녀 불평등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나의 소견으로는, 인류의 출현과 함께 바로 시작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인즉슨 수렵생활을 할 때에는 생명과 직결된 음식을 책임지는, 그러니까 직접 사냥을 하는, 남성의 지위가 여성에 비해서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왜 사냥을 하지 못했을까? 여성은 선천적으로 근력이 남성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물론 예외도 있었겠지만 그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이러한 신체적 능력의 ‘차이’가 오늘날의 ‘차별’에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남녀간에는 ‘과학적 문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전제하에 남녀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현대 사회는 전통 사회에 비해서 어떠한 직업에 있어서 신체적 제약이 약하다. 농경의 경우에는 이미 기계화가 이루어졌으며,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직업들도 힘을 쓰기보다는 사무실에 앉아서 정보를 처리하는 직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는 더 이상 여성들에게 제약을 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여성도 사회에 진출해서 얼마든지 남성만큼,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실적을 낼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와 같은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성이 사회에 진출함에 따라 남성이 가사 생활을 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보고  ‘저런! 능력도 없는 사람 같으니……’ 하는 식의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둘째,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 중의 하나는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무차별 평등주의’적 사고이다. 이러한 사고의 한 예가 양성평등 입장에서 ‘남녀가 모두 병역의무를 가져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인데, 장기간 전투 임무의 경우 여성은 신체적 특성으로 인해 평정심을 가지기 어려우며, 군부대 내의 풍기 단속에도 악영향을 끼쳐서, 작전 수행에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바람직한 여성참여의 도입을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나 양성평등 입각에서 남자도 하니까 여자도 해야 한다는 대립적인 논리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직업은 양성이 공유를 해야 하지만, 성에 따라서 그리고 선천적 문화적 각 개인의 고유의 자질과 특성에 따라서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이 따로 있다는 점을 이해하여,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 또한 양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평등 사회를 건설하는 데 방해가 되는 또 다른 하나는 자기중심적 사고이다. 남성은 남성대로 우월 의식에, 또 여성은 여성대로 피해의식에 쌓여 서로 자기들의 입장만 견지한다면 극단적 마초이즘 또는 페미니즘으로 빠져들게 되어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 입각해서 남성과 여성은 좀 더 열린 시각을 가지고서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타협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남녀의 선천적인 개인별 특성과 선호 자질에 따라서 남녀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생의 즐거움, 나아가 진정한 남녀 평등을 누릴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는 물론 ‘남녀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점들을 명심하고 실천할 때야말로 ‘남녀 차별’이 사라질 것이며,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해줌으로써 남녀 모두 행복한 사회,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 모두를 소중하게 지으셨다. 남녀 모두가 소중하다. 각각 그 만큼의 가치가 있고, 각각 그 만큼의 능력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남녀 각각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 속에 아름다운 평등 사회가 형성되었으면 한다.

 

<장려상>

학교 또는 가정에서의 양성평등 문화 조성 방법

 

인하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1학년 334번 허성원

 

   세계가 바뀌고 있다. 산업 사회의 종말과 함께 정보화 사회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어가고 있고 일원적 체계로 집중되어 있던 가치들이 흩어져 다원화 시대의 양상을 이끌어 가고 있으며 예전엔 하찮게 여겨지던 것들이 다시 그 진가를 발휘해 찬연히 빛나고 있다. 이에 발 맞춰 여권() 또한 약 1세기 전을 기점으로 하여 나날이 향상됨과 동시에 남성들에게 만성적으로 지워 지던 의무도 차츰 그 무게와 덩치를 감()하고 있다. 몇몇, 소위 진보적이라는 나라들은 양성의 평등을 실천하여 진일보하는 이때, 과연 양성평등에 대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양성 평등이란 말 그대로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 간에 우월(優越)이 없이 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용어의 대두는 바로 양성 간의 불평등이 근대까지 계속 되었으며 현대까지도 잔류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3000년 전 청동기 시대 때부터 농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가부장 중심의 사화가 출현하기 시작했고, 특히 한반도에서는 조선 시대 유교적 강령의 실천을 강조하며 여성을 규방안에 묶어 여러 불평등한 관계를 낳았다. 삼강(三綱)의 부위부강(夫爲婦綱), 오륜(五倫)의 부부유별(夫婦有別), 칠거지악(七去之惡) 등 여러 인습은 여성 인권의 급격한 하락을 초래 했으며 가부장 중심의 사회가 됨에 따라 가부장의 권리를 영유()함과 동시에 의무와 책임 또한 짊어진 남성 또한 사회적 기대감에 점철된 ‘남성다움’의 표상을 좇기 바쁜 시대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좀 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예를 들자면, 여성의 경우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도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숨겨야 할 일이고 꺼려지는 일이다. 물론 흡연은 유해하므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당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나 문제는 ‘여성’이 ‘담배를 피기 때문에’ 규탄 받는 현실이다. 남성이 담배를 피울 경우엔 암에 걸리지 않고 여성이 담배를 핀다고 해서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 특히 반세기 전에 청・장년기를 지내셨던 어르신들께서는 완고하게 반대하신다.

   

   남성 역시 어릴 적부터 ‘남자다움’을 강요당한다. 실례로 나는 이날 이 때까지 커오면서 ‘남자 주제에․․․․․․., ‘남자가 되어서․․․․․․., ‘사내대장부가․․․․․․.’  등의 어구를 수도 없이 들어왔고 지금도 듣고 있다. 여성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남성 역시 사회적 기대감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 것이다. 보부아르가 ‘(사람은)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가 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듯이 남성 역시 틀에 끼워져 더한 부분은 매서운 칼날에 잘리어지고 모자란 부분은 억지로 더해져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사회에 의해 양성 모두 상처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아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 물론 그때의 상황에서는 그런 것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술(上述)한 바와 같이 세계는 변하고 있고 우리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실질적 양성 평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양성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양성, 남자와 영자, 여자와 남자 간에는 필연적으로 차이가 따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체적인 차이일 것이다. 양성 평등이 실현되려면 여성 역시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인이 있는데, 이는 적절치 못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군대에서 하고 있는 수많은 강도 높은 훈련을 20대의 여성이 받았을 때, 그 여성의 신체적 결함과 정신적인 충격의 정도는 필연적으로 남성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둘째, 양성의 차이를 서로의 우월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세간에는 수많은 남성 우월론, 혹은 여성 우월론 같은 사상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양성간의 그 어떠한 차이도 서로의 우월을 만들어낼 수 없다. 예를 들어, 남성이 여성보다 체력이 좋다 하여, 여성이 남성을 힘만 있는 동물과 같다고 비하하는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 모두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경우라 하겠다.

 

   셋째, 차이에 따른 효율적인 역할 분배의 개념에 대한 이해이다.

양성 간의 차이는 필연적이므로 이에 대한 양성의 효율적 역할 분배 역시 필연적일 것이다. 속담 중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과연 암탉으로 비유된 여성이 집안을 이끌어가는 것이 집안을 망하게 할까. 만약 저 속담이 사실이라면 정치권에서 여권이 강세라면 그 나라의 정치는 엉망이 되어야 할 것이고 마거릿 대처나 메리 맥컬리스와 같은 여성 지도자들이 이끌었던 영국과 아일랜드의 국력은 현저하게 떨어져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거릿 대처가 있었기에 영국은 극심한 인플레이션(Inflation : 물가상승)을 억제할 수 있었으며 메리 맥컬리스 대통령의 노력이 있었기에 아일랜드의 소수 인권이 성장하고 민족 분쟁을 완만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다. 이는 여성의 지도력이 결코 남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물론 직업이나 특정 과제에 따라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고, 우연히 그 요구 사항이 남성 혹은 여성에 부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능력의 차이일 뿐, 어느 쪽에 차별을 한다는 말은 성립 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위에서 예를 들었던 군대 문제도 역시 만약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강인한 체력과 신체를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여성 역시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을 당연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위와 같은 사회적인 관념의 변화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생활 전반에서의 변화이다. 사회적 관념은 생활 방식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 방식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형성되기에 가정에서의 양성 평등에 관한 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어릴 때 형성된 습관은 거의 변하지 않으므로  어린 시절의 가장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코자 한다. 우선 남아(男兒)에게는 그동안 인습적으로 ‘넌 남자니까․․․․․․.’하면서 자연스럽게 등짐을 지어주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엄격히 구분해 가르쳐,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뿐 ‘우월’은 없다는 양성 평등적인 사고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아()의 경우는 남성보다 그 인습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우선 자신이 여성임을 비관하지 않도록 뚜렷한 여성관과 이성관, 사회관을 심어주고 또한 그 신념이 ‘여성 우월주의’라는 갓길로 빠지지 않도록 진정한 의미의 양성 평등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양성 평등의 의미와 실질적 양성 평등 실천에 대해 알아보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양성 평등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양성 평등의 개념을 확실히 하고 평등함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평등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섰을 때 이 사회는 전반적인 변혁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며 그 변혁의 기회의 이용 여부에 따라 사회의 발전 역시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장려상>

여성성, 남성성

나누지 마라

 

                                                        상무고등학교

3학년 3반 서혜리

 

  얼마 전, 서울 YMCA 총회장이 떠들썩했다. YMCA 이사회가 회원규정을 ‘사람’에서 ‘남성’으로 바꾸는 헌장개악을 결의한 것도 모자라 여성회원의 참정권을 제한하자는 헌정 개정안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헌장개정안은 다행스럽게도 부결되었으나,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던 YMCA에서 동고동락 해온 여성회원들을 밀어내려 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여성을 남성과 같은 위치의 동등한 인격체로 여겼다면 남성이 여성의 입지를 줄이려 노력하는 일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이런 부족한 ‘양성 평등’인식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우선, ‘양성 평등’의 개념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흔히 남성들에게 ‘여성에게 사회, 문화, 교육 등의 면에서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줘야한다’라고 하면 종종 ‘그럼 여성들도 우리처럼 군대에 가야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평등의 개념을 잘못 인식한 경우다. 우리는 그 동안 기회의 평등만이 평등의 방법인 것으로 잘못 생각해 왔다. 하지만 평등이란 기회의 평등뿐만 아니라 육체적, 생리적 약자를 보호하는 ‘조건의 평등’도 포함한다. 연약함, 순수함, 다소곳함을 강요받아 온 여성들이 육체적, 생리적인 면에서 남성보다 불리한 입장임은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사회 문화적 차이처럼 치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이것마저 평등하게 하고 싶다면 앞으로는 여성들에게 용감함, 터프함, 강인함을 요구해 보는 것은 어떤가. ‘차이’와 ‘차별’을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둘째, 양성성과 친숙해져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으로 ‘양성성’을 내세웠다. 양성성이란 남성과 여성이 갖고 있는 바람직한 특성들을 함께 지닌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적 특성을 많이 가진 사람은 여성적 특성을 거의 지니지 않고, 여성적 특성을 많이 가진 사람은 남성적 특성을 거의 지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970년대 심리학자인 산드라 벰은 이 두 가지 특성이 한 사람 안에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고 둘 사이의 균형은 개개인의 성격처럼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짐을 밝혀내었다. 이러한 양성성을 지닌 사람은 성 정체감이 고정된 사람보다 더 유연한 사회적 반응을 보이며 다양성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 적합하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를 둘러 싼 성 고정관념의 장벽을 부수고 모두를 ‘한 인간’으로 대우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무디게 하는 양성성에 한 걸음 다가가야 한다.

  셋째, 올바른 ‘평등’ 교육이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들의 성역할과 성적 고정관념은 가정과 학교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여자아이 방은 여성스러운 핑크색, 책은 공주님 이야기 책, 침대는 레이스 침대, 머리는 예쁜 꽃핀. 남자아이 방은 적극성을 키우는 파란색, 책은 전투이야기 책, 장난감은 로봇. 보편적으로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가지는 생각이다.  남자아이가 흙 묻히며 축구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기고 여자아이가 나가서 공차고 놀려고 하면 공주인형을 쥐어주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여자아이에게 로봇을 쥐어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건강하게 적응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려면 자신의 성별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이가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은 여학생이 사고라도 치면 ‘여학생이 조신하지 못하게 이게 뭐니?’라고 하거나 남학생이 삐지기라도 하면 ‘남자가 속 좁게…… 남자답지 못해.’라고 하기 쉽다. 여기서 학생들은 보통 사회적으로 성 관념이 고정되어 버린 경우가 많지만 사회 윤리 국어 교과서 등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윤리과목에서는 여성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예로부터 여성 중에 위대한 사상가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국어 교과서의 문학 작품들 중 시 속에는 끝없이 남성을 그리며 기다리는 수동적 여성이 수도 없이 등장하고 남성들은 충과 자신의 포부를 자주 드러내는 내용이 많다. 소설 속 남성들의 경우도 영웅적이고 당차며 그런 남성의 이상형으로 등장하는 여성은 아리땁고 다소곳하며 순수하다. 학생들은 그런 여성 혹은 남성을 각 성()의 대표자로 여긴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교과서를 수없이 반복해 읽는 학생들에게 성 개념을 정확히 둘로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과서 내용을 개혁하자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양성 평등 교육을 위해 학생들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생님들의 평등적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리에서는 여성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거나, 국어에서는 시 또는 소설 속의 수동적이고 미를 강조하는 ‘여성성’이라는 것이 남녀 차별의 기준선을 긋는 것임을 알려준다거나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되겠다.

  제아무리 평등을 외쳐도 양성평등이 사회의 커다란 축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은 국민들의 의식 변화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의식이 먼저 변화해야 하며 사회는 국민과 시대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변하지 않고 경직된 사회는 살아남지 못한다.

  요즘은 ‘여성 국무총리, 여성 시장후보’ 등을 연일 메스컴에서 떠들어 댄 덕에 남성과 여성이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보여 ‘양성 평등’의 얘기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한다. 그러나 여성이란 말 앞에 ‘최초’란 말이 붙어 다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성 차별적인 것들이 우리의 의식과 사회 속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 스스로가 열린 사고로 한 사람을 ‘여성적이다, 남성적이다’로 평가하지 말고 사람을 사람, 인격체 그 자체로 대해야 하겠다.

 

<장려상>

양성평등! 마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성일정보고등학교

3학년 3반 김민정

 

1. 눈에는 보이는데.......

 

  ������오늘은 네가 설거지 담당이야. 맞지?������

  일요일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면 중학생인 남동생에게 제가 하는 말입니다. 남동생은 ������응������이라며 흔쾌히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합니다. 엄마께서도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당연하게 커피 한 잔을 들고 노트북 앞으로 가 버리시죠.

좀 이상하다고요?

저희 집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정경이랍니다.

  설거지나 청소를 하시는 우리 아빠, 남동생이 밥을 지을 때도 있는 우리 집. 아빠와 엄마가 양반의식이 짙게 남아있는 영남지역 태생임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가사분담이 아주 잘 되는 집이 바로 저희 집이랍니다. 가끔 친구들이 놀러 와서 동생이 설거지 하는 것을 보고 ������네가 하지. 어떻게 남동생한테 시키니?������하기도 하죠.

그럴 때 나는 우리 집안 남자들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께서도 여든이 넘은 연세이심에도 불구하고 밥, 설거지, 빨래를 하시며, 할머니의 집안일을 대부분 도와주십니다. 두 분의 연세를 생각해본다면 파격적인 가사분담이시죠.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큰아빠 두 분께서도 집안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집이 우리 집안입니다.

  특히 첫째 큰아빠께서는 큰 엄마의 짐을 덜어주시기 위해 새벽밥을 직접 지으시며 사촌 오빠 둘을 키우셨습니다. 물론 저희 아빠께서도 요리는 물론 청소, 빨래를 수준급으로 잘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성()차별을 거의 모르고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도 제게 ‘너는 여자이니까 밥하고 빨래를 해야 하고, 동윤이는 남자이니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쓰레기 분리수거나 슈퍼마켓에 심부름을 하는 것은 남동생을 더 시키십니다. 휴일이면 순번제로 돌아가는 설거지와 대청소에 남동생이나 아빠를 제외시키는 일은 절대 없죠.

  이런 우리 집안, 누가 보아도 남녀가 평등한 ������양성 평등 모범 집안������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2. 여성의 마음이 변해야.........

 

  표면적인 양성 평등.

  저희 집에서는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꼼꼼하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은 집이 우리 집인 듯합니다. 부모님께서는 동갑내기 부부이십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께 깍듯이 존대어를 사용하지만 아빠는 반말을 쓰십니다. 가정생활 속에서도 아빠의 남성 우월성은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거실 소파에 옷을 던져 놓더라도 아빠의 옷이 항상 위에 놓여야 하고, 아빠가 집에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주무시지도 못하는 사람이 엄마이십니다. 엄마의 말씀을 빌리자면 아빠는 우리 집의 구심점이시랍니다.

������누군가 중심이 있어야 집안이 제대로 된단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그 역할로 아빠가 적격이지 않니?������하는 것이 엄마가 항상 저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성균관 儒林이십니다. 호주제 폐지 법안이 논의될 때도 성균관에서 항의모임을 하셨고, 손바닥만한 족보를 작성하셔도 남자가 우선이신 분이십니다. 저와 남동생에게 용돈을 주실 때도 동생에게 먼저 주시고, 그 다음이 제 차례이지요.

주시면서 꼭 이 말씀을 하십니다.

 ������아들이 우선이니까 네가 먼저 받고, 딸은 나중이고.������

  하긴 아들을 낳자고 딸을 다섯이나 낳으신 분이니 아들인 제 남동생이 얼마나 예뻐 보이겠습니까?

  외할아버지는 남아선호사상이 예전부터 많으셨답니다. 엄마는 대학을 자력(自力)으로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교까지만 졸업을 하도록 하셨고, 외삼촌들은 외할아버지께서 학비를 대주시면서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마치게 한 얘기만 들어봐도 외할아버지의 남녀 차별은 유별나십니다. 엄마는 그 점이 아직도 서운하신지 가끔은

 ������아들이 뭐 그리 대단해서 그렇게 감싸고 사셨는지. 딸도 자식인데.......������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서운하다고 하면서도 엄마는 은근히 남녀 차별을 인정하는 행동을 하십니다. 엄마는 아니라고 하시지만, 제가 보기는 남녀 차별인 거죠. 그렇다고 저나 남동생을  많이 차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엄마가 아빠께 하시는 행동이 그렇게 보이죠.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성()차별의 인식이 너무도 뿌리 깊게 박힌 우리 엄마. 덕분에 아빠께서는 ‘남자의 권위 또는 남자의 우월성’에 도취된 듯한 행동을 보여주실 때도 많습니다.

 반면에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가 우선이십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할머니의 위세 앞에 기세를 못 펴십니다. 큰엄마의 좋은 표현을 빌리자면 [표본이 될만한 양성평등]이라고 하시지요. 그런데 그런 할머니께서도 엄마를 포함한 큰엄마 두 분께는 ‘남자가 우위’라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십니다. 아들보다 며느리는 무조건 아래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아빠께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엄마는 할머니의 이런 생각 덕분에 큰엄마들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친정에서 제대로 배웠다. 내 아들이 대접 받으니 보기 좋다������는 말씀을 너무 쉽게 하시죠.

  제가 보기에는 지극히 본인 위주의 생각이십니다.

정작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보다 우위의 자리를 갖고 계시니까요. 그럴 때면 영락없이 대한민국의 시부모 노릇에다,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실천(?)하시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제게도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너는 여잔데 교육 많이 받을 필요 없다. 고등학교만 마치면 취직해서 시집이나 가라.������

반면 남동생에게는,

������공부 많이 해야 된다. 남자는 자고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여자한테 대접받는다.������ 라고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화가 납니다. 저는 대충 배워도 되고 남동생은 많이 배워야만 하는 할머니식의 논리가, 엄마가 밟아 오신 전철을 밟는 기분입니다. 엄마는 항상 말씀하십니다.

������너더러 동생을 공부시켜라 마라. 또는 네가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하기 싫다. 너는 너고 동윤이는 동윤이야.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살아야지. 남매간의 배려는 필요하지만,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너무도 쉽게 저와 남동생을 구분지어 버리십니다. 그렇다고 할머니께 따졌다가는 이내 돌아올 대답을 저는 너무도 잘 압니다.

������계집애가 어디 어른한테. 여자는 그저 입 다물고 밥하고 빨래 잘하면 그게 최고야������

남동생이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는 것은 ������남자다움������이고, 제가 말대답을 하면 ������계집애가 버릇없는 것������이 되고 마는 할머니의 인식. 게다가 명절이면 큰아빠나 큰엄마에서는 ‘여자이니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또는, ‘저건 나중에 어디다 팔아먹어야 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큰엄마도 같은 여자이면서 결혼시킨다는 표현을 꼭 ������팔아먹는다.������로 하십니다.

그 말을 들으면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쓸모없는 존재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우리 집에서도 마음으로 보면 남녀차별의 근원적 원인이 되는 남성들의 고정관념과 여성들의 잘못된 생각들이 보입니다.

 

3. 삼순이는 없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못 생기고 뚱뚱하고 학벌 없고 돈도 없는 삼순이가, 잘 생기고 인물과 몸매도 좋고 학벌 좋고 돈까지 많은 삼식이와 사랑을 하는 드라마였죠. 그 드라마를 아주 기분 좋게 보았습니다.

  도대체 남녀 차별이 어디 있습니까?  오히려 삼순이가 더 큰소리를 치는 것이 얼마나 통쾌하던 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닙니다.

  남자들은 여리고 예쁜 여자를 좋아합니다. 뚱뚱하고 드세고 못 생긴 여자는 사람취급도 하지 않죠. 남자들은

������남자와 여자는 절대로 평등할 수 없어. 왜냐하면 신체 구조 자체가 틀리잖아.������

라고 말합니다.

인정합니다.

여자는 여린 몸매가 여자다워 보이고, 남자는 우람한 몸매가 남자다워 보일 정도로 신체 구조가 틀리죠. 제가 다니는 학교는 남녀공학입니다. 어느 정도는 양성 평등을 실천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이죠. 하지만 학교에서도 양성 불평등은 곳곳에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엄연히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여학생들은 꾸미고 노래하는 것을 잘하고, 남학생들은 뛰고 달리고 계산하는 것을 잘 합니다.

그런데 체육, 음악, 미술, 수학도 모두 같은 기준에서 판단되어 채점이 됩니다.

솔직히 저는 체육은 자신이 없습니다.

다른 여학생들도 남학생들만큼 잘 하지 못하죠. 하지만 수긍해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남학생들은 [양성평등]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같이 하자고 합니다. 청소와 체력이 요구되는 각종 행사준비도 모두 똑같은 분량으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물며 벌을 서는 강도도 같아야 한다며 [양성평등]을 말합니다.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양성평등일까요?

  일상생활을 할 때는 삼순이처럼 씩씩하고 튼튼한, 그래서 여성적인 매력은 없지만 힘은 무지하게 좋은 여자를 원하는 남자들. 사랑을 하거나 결혼을 할 때가 되면 예쁘고 여린 여자를 원하는 남자들. 실감나게 대리만족을 보여주었던 삼순이는 언제쯤 진정한 양성평등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양성 평등을 위해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4. 나라는 객체의 파악이 중요하다

 

  조금씩 나이가 더해지면서 저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어떤 남자를 만나면 좋고, 결혼 생활은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주제를 두고 엄마와 얘기도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의 결혼 생활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아빠 엄마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1월 방학 때는 한 달 내내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하면서 두 분의 생활도 유심히 관찰해봤습니다. 결론은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양성평등의 실천자 같습니다. 그런데 속속들이 살펴보면 아빠 엄마가 양성 평등을 더 잘 실천하고 계십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할머니 말씀을 아주 잘 들어 주십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할머니와 다투기 싫어서 하시는 행동������이십니다. 한마디로 집안이 편안하고자 하시는 행동이시죠. 할머니를 여성이라는 동격으로 완전하게 대접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 소리 없이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강하신 상태. 가끔은 할머니를 경원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행동도 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할머니께서도 아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증조할아버지의 제사 때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서운하게 하시는지를 말씀하시며 우셨습니다. 사람 취급을 않는다는 것이 요지였죠. 그래서 할아버지께 윽박지르듯이 하는 행동을 자꾸 하시게 되는 듯 했습니다. 대접받지 못하는 서운함을 조근 조근 털어놓기보다는 화풀이처럼 할아버지를 부려먹는(?) 할머니를 보고 있자면, ‘안됐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반면에 엄마는 철저하게 아빠를 기준으로 하는 행동을 하십니다. 두 분 연세가 동갑임에도 철저하게 존대어를 사용하고 아빠 위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가 보면 ������남녀 차별이 상당한 부부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엄마는 자신이 한 만큼을 돌려받습니다. 인격적인 대접이죠. 아빠는 철저하게 엄마를 인정하십니다. 아빠가 받은 만큼 엄마의 인격은 아빠께 업그레이드된 상태로 존재하고, 그만큼 대접받는 것이 제 눈에도 보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엄마가 노력하는 모습도 제 눈에는 보입니다. 자신을 끝없이 채찍질하며 일정부분의 긴장 상태로 자신을 다듬는 그것만으로도 아빠와 엄마의 양성 평등은 마음에서 간단하게 이루어져 버린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빠와 엄마.

각각 다른 가족들의 관계를 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바로, [자아의 완성이 우선시되어야 양성 평등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면서 무조건적인 양성 평등을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실감했죠. 대신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양성 불평등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느 한쪽의 노력이 그 가치를 발할 수 있고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양성 평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여성 총리나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적 이슈가 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여성들은 노력해도 안 되는 양성 불평등에 놓여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일단 가정과 학교, 더 크게는 직장에서만이라도 어느 한쪽의 노력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여성이 건축 설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여자가 했다는 이유만으로 허술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남자 간호사라고 해서 [환자를 위해 작은 것까지 챙길 줄 모른다]는 식의 선입견도 없애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양성평등. 그 첫째의 조건은 자아의 인식과 열심히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겪는다면 이런 불평등을 해소할 다른 방안을 찾는 일은 양성평등의 두 번째 조건이 될 것입니다.

 

5. 마음을 열자

 

  여성들은 섬세하고, 남성들은 힘이 셉니다. 여성들은 작은 것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남자들은 작은 것을 소홀하게 다루는 경향이 많습니다. 여성들은 작은 행복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알며,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젊은 날을 소진시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서로 이런 부분을 이해하기보다는 배척하면서 [성차별]을 은연중에 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인터넷에서 설문조사를 한 것을 보았습니다. 남녀 공학의 학교에서 이성에게 가장 부끄러울 때가 언제냐는 것이었죠. 1위를 한 내용이 바로 상대의 단점을 들춰낼 때였습니다. 남학생에게는 [남자란 녀석이 도대체?]였고, 여학생에게는 [여자답지 못하게..]라는 것이었죠.

  바로 남자는 남자다운 행동만 해야 하는 것이고, 여자는 지극히 여성적이어야 한다는 억압적인 말이 결국에는 [양성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것.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랍니다.

  딸에게는 지나치게 여성성을 강조하며 일정한 틀에 묶어 버리고, 아들에게는 용감해야한다는 방식의 남성성만을 강조하는 것이죠.

  남자와 여자는 고유한 특징이 있고 성격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 개인마다 각기 다른 소질과 특징도 있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부분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남자가 할 일을 여자도 하고, 여자가 하는 집안일을 남자도 하는 것.

더 크게는 아들딸 차별 없이 대학을 보내는 것만으로 양성 평등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가 마음을 여는 것이 양성 평등의 세 번째 조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대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단점을 서로 보완해줄 수 있는 양성우호적인 관계. 겉으로 하는 행동은 [양성평등]이면서 말로는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파는 [양성 불평등]을 하는 이해부족의 [양성평등]은 절름발이 양성평등일 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알면 사랑한다]

  그렇습니다.

  상대를 알면 그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불변의 원칙입니다. 그것이 이름 없는 돌 한조각일지라도 알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을 아는 일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을 제대로 아는데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성은 남성을, 남성을 여성을 인격체로 인식하고 동일한 사람으로서 알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양성평등]이라는 거창한 구호 없이도 참된 평등의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해결책은 바로 남녀의 서로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조화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행동만으로 [양성평등]을 실천했다고 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는 진정한 양성 평등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열어 남성은 여성을 존중하고 여성은 남성을 신뢰하는 하나의 객체로 거듭나는 날, 빠른 시간 내에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태초부터 하나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로 존재할 테니까요.

 

<장려상>

양성평등, 이젠 구체적인 실천이 중요시 되어야

 

강원도 춘천 춘천고등학교

3학년 3반 이정민

 

  얼마 전의 일이다. 대학에 진학한 선배를 오래간만에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선배는 양성평등을 위한 여성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뜻밖의 일이라 동기를 물어본 즉, 선배는 대답했다. “남학교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에게 하는 말들이 있잖아. 그런 것에도 여자들은 상처를 받더라고…… 잘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양성차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운동에 가담하게 됐지.

  양성평등을 위한 운동은 꽤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고, 우리 사회에도 꾸준히 제기된 문제들이다. 작년에는 한 여학생이 국방의 의무를 여자에게도 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다시 양성평등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할 때뿐, 양성평등을 위해서는 어떤 방안들이 구체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안들을 모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방안을 말하기에 앞서, 그 당위성에 대해 말해야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선 양성의 차별을 차이와 구분하지 못하기도 하고, 또 한 쪽에선 유교적 가치관의 수호를 주장하며 우리만의 전통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주장이다. 과거에 농경사회에는 노동력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때문에 물리적 힘이 센 남성이 여성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여성들은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보통선거권의 획득을 계기로 여성운동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역차별 등이 제기 되며 진정한 양성 평등의 운동이 확산되어 갔다.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양성평등의 실현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 세계의 보편성을 고려하지 않은 문화지체 현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당위성이 있기에 양성평등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민들의 의식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성평등을 법제화 시켜서 불평등이 일어나는 사례들을 법으로 금지시키는 방안이다. 이 중 후자는 이미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법이 제정되었다고 하여도, 시민들의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이 제고되지 않는 다면, 법의 제정도 말짱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만다. 시민들의 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로는 법자체가 실생활에서 시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시행된다 하더라도 그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성평등 실현에는 그것의 전제로 시민들의 의식 제고가 이루어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의식의 제고의 대부분은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로 그동안 수행된 연구에서 양성의 서로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이 청소년 시절에 가장 많은 비율을 형성된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이것은 양성평등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보통의 경우 이때 형성된 가치관이 성인이 되기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이 사회에서의 양성 불평등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즉 청소년 시절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인데, 이는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의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학교와 가정에서 구체적으로 양성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첫째로, 특수 목적의 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든 학교가 남녀 공학으로 제정하는 방안이 있다. 이미 수도권의 대부분 학교와 광역시 등의 학교는 공학인 경우가 많지만, 지방의 학교들은 대부분 공학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남녀공학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소위 말하는 상대 성()에 관한 ‘환상’, 즉 스테레오-타입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역시 사회생활에서 양성차별의 가능성을 짙게 한다. 또한 공학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평등교육은 그 실천에서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탁상공론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서로가 부딪히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공학이 아니면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진로교육의 과정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다. 흔히 우리 사회는 어떠한 직업에 대해 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간호사의 경우를 예로 들면, 우리는 남자간호사를 아직도 신기하게 쳐다본다. 이 같은 직업에 대한 성 부여 현상은 인간으로서 자아실현을 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들을 앞으로의 사회를 이끌어나갈 청소년들에게 교육하는 것을 통해 양성평등의 근원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셋째로, 가정에서 부부간에 존댓말을 쓰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부모가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아이의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족의 경우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존댓말을 쓰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반말을 쓴다. 그러면 그 집의 아이는 보통 아버지에게 존댓말을 쓰고, 어머니에게는 반말을 쓰게 된다. 언어가 인간의 가치관과 사상을 지배한다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이들 중 다수가 사회 곳곳 양성불평등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언어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도 언어가 행사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존대와 반말의 차이는 그 영향력이 지대한 것임에는 자명하다. 부부간의 존대는 아이의 양성평등에 대한 마인드를 무의식적으로 심어주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들과 학부모, 시민단체가 연합한 정기적인 양성평등의 교육과 지속적인 모임이 필요하다. 교사들의 경우 연수를 다녀온 후 한 달 정도는 배운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그 문제를 뛰어넘지 못하고 새로운 방안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학부모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학부모들끼리 모임을 갖은 후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가정에도 좋은 방법들을 적용시키려 애쓰지만 집에 돌아오면 모두 원위치가 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굳어진 것들을 단번에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양성평등에 관한 근본적인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인권전문가와 시민단체에게 교육을 받으며 지속적인 모임을 갖고, 학부모도 시민단체와 연합하여 지속적인 모임을 갖으며 교육을 받아야 한다. 또한, 학부모와 교사들이 지속적인 모임을 갖으며 현실에 봉착한 문제들을 풀어가야 한다. 특히 교사들은 교육과정 중 교제나 제도에 양성 차별적 요소가 없는지 살펴보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교육을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더욱 질 높고 현실적인 양성평등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흔히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녀석이 남자답지 못하게……” 혹은 “여자답지 못하게……” 하는 소리들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성에 대한 고정적인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정보화 시대에서의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나,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성평등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평등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어떤 성장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실천해야 한다. 의논만 할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구체적인 방안을 바탕으로 실천하여 더 높은 성장을 꾀해야 한다.

 

 

<장려상>

우리가 원하는 세상

 

                                                    전주솔내고등학교

                                               1학년 1반  김윤혜

 

우리 사회는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정에서는 장유유서뿐만이 아니라 부부유별, 부자유친 등 인간관계마다 예를 갖추는 것을 덕목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가 성별에 따른 차별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아래의 경우는 내가 겪은 양성 차별의 한 예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해야할 점들에 대해서도 덧붙여 생각해 보았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들 왔네~, 남자들부터 얼른 세배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랴, 그랴, -옛다, 세뱃돈.

“감사합니다.

“기집애들은 절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돈만 받어.

“네. 고맙습니다.

 

위의 경우는 해마다 반복해서 겪고 있는 양성 차별의 첫 번째 예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작은할머니께 세배도 안 드리고 돈만 받는다고 무례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미 예전부터 이런 취급을 받아온 우리집안 여자들은 오히려 이런 남녀 차별에 익숙해져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남자들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늘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자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기분이 나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형평성에 어긋나는 남녀차별이라고 매번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불만을 아버지께 토로하면 아버지께서는 웃으시면서 “작은 할머니께서 예전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계셔서 그러시는 거니까 우리 딸이 이해해라. 할머니께서는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시거든.”이라고만 하신다. 이제는 나도 그냥 이해한척 넘기지만, 그래도 매번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것도 바로 웃어른에 대한 공경을 잘못 적용시켜 오해의 소지를 갖게 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 집은 여느 집들과 같이 여자들은 성묘나 제사상에서 절을 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어렸을 때는 절을 안 하니까 편해서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조금 크니까 ‘가정 내 성차별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음식 준비나 제사상 차림은 여자들만 한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올라치면 됐으니까 그냥 나가라고만 하신다. 이러한 경우는 우리 집안뿐만이 아니라 여러 집안이 두루 겪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조차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잘 적응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말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품게 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것저것 눈치를 봐야하는 분위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 양성평등을 위한 외침을 마치 사회를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는 듯한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식을 바꿔야 한다.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알지 못하는 애정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애정이 있다면 어르신들은 자신의 아이가, 손자가, 친척들이 당신의 행동 때문에 상처 받고 있고, 사회를 바꾸기 보단 쉽게 타협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말로 그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어른들만 태도를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하는 입장에 있는 자들도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르신께 당당하게 그러나 예의를 갖춰서 자신이 그동안 느껴왔던 것을 말하고 이런 부분은 우리가 같이 바꿨으면 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소신대로 말씀드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어른이시라고 해서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면 이는 주종관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윤리나 법도를 따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존중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윤리요 법도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예는 호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전에 국어 선생님께서 남녀 차별적인 호칭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현재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 너희들은 왜 며느리가 남편의 남동생을 도련님 또는 서방님이라고 부르고 여동생을 시누이 또는 아가씨라고 부르는지 아니? 그건 옛날에 며느리가 집안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야. 시누이나 도련님은 새언니, 형수하면서 반말을 할 수 있지만 며느리는 아가씨, 도련님, 서방님하면서 자연스럽게 존칭이 나오지? 그리고 며느리가 시누이 보고 아가씨라고 할 때의 호칭을 생각해봐. 예전에는 종들이 높으신 분들에게 아가씨라고 불렀잖아. 이것만 봐도 지금 사회의 호칭이 얼마나 잘못 됐는지 알겠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해 보지 않고 그냥 넘겼던 호칭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럼, 여기서 선생님께서 하시고 싶으셨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내 생각에는 우리에게 가정에서의 차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적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고 싶으신 게 아니었을까 한다. 호칭에서마저도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뿌리가 얼마나 깊고 질길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열변을 토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나는 가정 내에서의 양성 차별이 의외로 많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호칭을 바꾸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국어 쪽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호칭을 비롯한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제 학교에서의 양성 차별에 대해서 말해 보겠다.

여학교의 경우 복도에서 뛰거나 소란스럽게 하면 ‘어디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라는 소리를 듣거나 여학생이 그러면 안 된다느니 하는 등의 한참 사춘기 시절의 학생들에게 남녀 차별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남성들도 가사를 전담하거나 맞벌이를 하면서 가사를 분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에 성별을 적용시켜 판단하는 것도 분명한 차별이다. 여성과 남성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보아야한다. 그러려면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남녀를 차별하는 발언이나 행동이 아닌지에 대해 늘 생각하고 따져보고 또 변화하려고 하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따라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보통 양성 차별을 여성만이 겪는 문제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남성들도 여성들과 사회로부터 적지 않은 차별을 당하고 있다. 남자들이 당해온 남녀 차별을 생각하지는 않고 여자는 무조건 사회의 약자라는 인식을 이용해 오히려 남성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자라서 천성적으로 보호 받아야 하는 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빌미가 되어 남성들이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양성 평등에 반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회가 바뀌기만을 바라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우리가 요구하기 전까지 사회가 스스로 바뀌는 일은 드물다. 그러므로 양성이 평등하려면 적극적인 주장을 펼치는 노력과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고 바람직한 일인지를 따져보고 적극 실천에 옮겨야 한다. 남자로서의 편견, 여자로서의 편견 그리고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모두가 ‘나’라는 마음으로 생각이 열리게 된다면 양성 모두 평등한 사회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양성이 평등한 사회.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하는 양성이 평등한 세상은 생각의 전환을 통해서 가능하며, 오늘도 나는 양성이 평등한 문화의 조성을 생각하며, 이런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

 

 

 

<장려상>

현재에게 보내는 편지

     

광양백운고등학교

1학년 구영옥

 

 현재에게

  안녕? 내 이름은 미래라고 해. 너와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서 편지를 쓴단다. 과거 세계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처음이라 매우 긴장 돼. 오늘 도서관에서 아주 신기한 책을 발견했는데 말이지 그게 뭐였는지 알아? 바로 “수백 년 전 한국의 남녀차별 이야기”라는 책이야.

  이 책에는 네가 살고 있는 세상과 그 훨씬 이전의 한국 사회의 남녀차별을 상세히 알려주는 내용이 있었어. 나는 이 책을 읽고 정말 신기했어. 어떻게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는지 말이야. 우리는 약 20년 전에 남녀차별을 완전히 없애고 평등원칙주의를 실현하였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녀차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지.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아주 놀라운 사실들을 알려주었고 나는 몇 가지 충격을 받게 되었어 .

  먼저 네가 사는 곳은 국회의원의 90%가 남자라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어. 우린 정치적 활동에서도 여자와 남자의 동등함을 인정해.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에도 법적으로 선출되는 국회의원의 남녀비율을 반으로 정하여 투표를 하거든. 그래서 여자도 정치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어. 그게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고 있고. 그래서인지 여성단체의 운동도 아주 활발해.

  두 번째로는 바로 남자가 가장이 되는 호주제라는 것이었어. 바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걸 말한다지? 물론 옛날부터 지켜오던 전통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선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단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의 성을 따를 것인지 어머니의 성을 따를 것인지를 부모님이 함께 합의를 본 후 우리의 성을 결정해. 실제로 우리 아빠의성은 구씨인데도 나는 엄마의 성을 따라 백 미래이거든. 하지만 우리언니는 아빠의 성을 따랐어. 이렇게 한가정이지만 엄마의 성을 따르기도 하고 아빠의 성을 따르기도 하고 매우 다양하게 존재해. 그래서 네가 겪어야 하는 여자라서 불평등한 느낌은 지금은 거의 없지. 너도 가끔 너희 엄마의 성을 따라 보고 싶진 않니?

  그리고 세 번째로는 직장 취업에 관한 일이야. 그곳에서는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취업에 불리한 경우도 있고 남자만 뽑는다는 생각을 가진 그런 회사 때문에 취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고 하더라. 이것은 상당히 불합리한 직원 채용이 아닐까 생각해. 보통 생활에서도 보듯이 여자가 남자에 비해 더 일처리가 꼼꼼한 장점이 있는데도 말이지. 그리고 직업 역시도 남자와 여자의 직업이 정해져 있다는 말을 들었어. 주로 미용사나 간호사는 여자의 직업이라고만 생각하고 엔지니어나 수리공 등 남자의 직업으로 본다지?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남녀의 직업이 아주 다양해서 천차만별이야. 어느 미용실에 가보면 남자 미용사들이 가득해. 미용이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하기에 더 적합한 면이 있다지. 또 자동차나 가전기기 수리에는 세밀하고 꼼꼼한 성격을 가진 여성들이 수리를 해주어 더 맘에 든다는 고객들도 많아. 그래서 이렇게 서로의 특성을 살리며 직업을 선택 해나가지. 무조건 남녀의 직업이 고정되어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 어때 놀랍지 않니?

  내가 더욱 놀랐던 것은 당시의 생활을 반영한 속담을 듣고서였어. ‘술에 계집은 바늘에 실이다.’ 처음엔 이 말이 무슨 말일까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말인즉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술을 마시는 곳에는 여자가 있게 마련이라는 뜻이더라. 이 말이 얼마나 성적으로 여자를 희롱하는 말인지 나는 무척이나 기분이 언짢았어. 몹시 당황스럽고 이해 할 수 없었지. 사람들이 이런 생각으로 여성을 대하고 있었다 생각하니 정말 실망이었단다. 성적 희롱도 남녀차별의 한 부분이잖아.

  과거의 우리 한국에서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차별을 당하는 것 같아서 현재 너를 생각하면 매우 슬퍼. 물론 남자들도 자신의 불평등을 말하더구나. 예를 들면 무거운 짐 들기나 힘든 일 맡아서 하기, 군대 가는 일 등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러나 요즘은 휴대용 로봇이 있어서 무거운 짐은 모두 들어주기 때문에 그런 남자의 역할이 줄었어. 그래서 서로의 불만이 사라지고 있지. 나 역시도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갈 생각이야. 어때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니?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과거의 한국 여성들의 불평등함을 보고 매우 화가 났어.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면 말이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점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단지 서로의 특성이 다른 점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네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과학의 발달로 여성의 능력이 인정받고 존중되는 시대가 될 거야. 그런 점에서 2006년에 첫 여성 총리가 나왔다는 소식은 너에게 매우 반갑고 신선한 소식이었겠지. 현재야 나는 지금 그곳에서 살고 있는 너의 생각이 궁금해. 꼭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답장을 기다릴게. 안녕.~!!!

 

213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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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at all. – Helen Keller